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현장, 은반 위 선수들 이상으로 뜨거운 시선을 받는 인물이 있다. JTBC 피겨스케이팅 해설위원 임은수(23)다. 지난 11일, 밀라노 아이스 스케이팅 아레나에서 만난 그는 마이크를 잡고 제2의 올림픽 인생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국내 팬들은 각종 커뮤니티에 “피겨 중계석에 K팝 아이돌이 앉아 있다”고 한다. 일본에선 더 난리다. 일본의 데일리스포츠는 “눈부신 미모에 전문성까지 갖춘 해설가”라며 그가 등장할 때마다 술렁이는 경기장 분위기를 조명했다. 쏟아지는 관심에 정작 본인은 얼떨떨한 기색이다. 임은수는 “해설 준비와 사운드 체크로 정신이 없어 화제가 된 줄도 몰랐다”며 “부족한 초보인데 예쁘게 봐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사실 이번 올림픽은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첫 중계 당시 얇은 단복 차림으로 영하의 링크장에서 5시간 넘게 강행군을 이어가다 응급실로 긴급 이송되기도 했다. “위액에 피가 섞여 나올 정도로 몸 상태가 무너졌었다”는 그는 “참 버라이어티한 인생이다 싶었지만, 금세 회복해 다시 씩씩하게 마이크를 잡았다”며 오뚝이 같은 면모를 보였다.
그의 말대로 임은수의 짧은 피겨 인생 자체가 버라이어티했다. 2015년부터 7년간 태극마크를 달았던 그는 ‘피겨를 위해 태어난 몸’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김연아 이후 한국인 최초로 그랑프리 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절정의 순간, 예기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2019년 세계선수권 리허설 도중 경쟁 선수의 스케이트날에 종아리를 찍히는 초유의 사고를 당한 것. 그는 다리에 테이핑을 하고 출전을 강행해 ‘김연아 이후 첫 200점 돌파’라는 기적을 썼다.
그러나 사고 이후의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임은수에게 상처를 준 선수와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 동영상을 보고 고의성이 있었다고 보는 사람도 많았다.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선발전을 앞두고 미국에서 일어난 토냐 하딩-낸시 캐리건 사건 비슷하게 흘러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선수는 “불의의 사고”라고 주장했고 국제빙상연맹은 고의성이 없다고 판정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사건 이후의 진실 공방 등은 어린 선수의 마음에 깊은 흉터를 남겼고, 결국 2023년 정든 은반을 떠나야 했다. 임은수는 “담담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억울하고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래도 묵묵히 제 몫을 해내며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최고의 모습은 아니었을지라도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덧붙였다.
은퇴 후 배우로 변신해 뮤지컬 아이스쇼 ‘더 루나’의 주인공으로 서며 연기와 노래라는 새로운 재능을 꽃피웠고, 해외를 누비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코치로도 활약 중이다. 그리고 선수로서 차마 밟지 못했던 올림픽 무대에 ‘해설위원’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섰다.
“선수는 아니지만 올림픽의 일원으로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제 삶을 멀리 봤을 때 선수 시절의 아픔은 어떤 어려움도 마주할 수 있는 단단한 거름이 되어주었으니까요.”
이제 그는 비상하는 후배들을 응원한다. “이전에 없던 점프를 뛰는 일리야 말리닌도 놀랍지만, 한국 피겨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차준환 선수가 이번에도 큰 무대에서 제 실력을 발휘해주길 믿는다”는 격려를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