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가전업체들이 수요 정체와 중국 기업의 거센 추격 속에 성장 한계에 부딪혔다. 전통의 ‘가전 명가’ LG전자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도 돌파구 찾기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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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하면 몰락”…가전 명가의 위기감
12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가전 제조사들은 올해도 실적 정체 또는 수익성 악화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키움증권과 NH투자증권은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생활가전(DA) 사업부가 각각 1조4980억, 2조160억원의 영업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 유안타증권도 미국 가전을 대표하는 월풀 매출이 지난해 15조6892억에서 올해 15조6210억으로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로이터는 최근 스웨덴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일렉트로룩스에 대해 “수요 부진과 저가 경쟁 심화 속에서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선 ‘가전 명가’ LG전자가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시장 외형은 넓히고 수익성은 끌어올리는 전략이 골자다. 가전 부문에서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제품군을 강화하면서도 프리미엄 전략을 병행하고, 인도·멕시코 등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신흥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 냉난방공조(HVAC)와 자동차 전자장비(전장·VS) 등 기업 간 거래(B2B) 비중도 빠르게 높이고 있다. 실제로 VS사업본부는 지난 분기 흑자(영업이익 1581억원)를 기록했다. 장기간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는 구독(렌탈) 서비스 역시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브라운관 시대를 이끈 일본 소니는 보다 과감한 선택을 했다. 소니는 지난달 중국 TCL과 TV 합작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지분은 TCL 51%, 소니 49%로, 사실상 TV 사업 결별이라는 해석이다. 이미 소니는 전자회사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엔터테인먼트 종합상사’로 변신했다. 전 세계적인 흥행을 거둔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은 물론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제작에도 소니 자본이 투입됐다. 게임 기기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콘솔 게임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는 것도 전환의 결과다.
LG전자의 미래 먹거리 고민도 깊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LG반도체 사업 철수는 여전히 뼈아프다. 실제로 2002년부터 지난 2월까지 시가총액 흐름을 보면 LG반도체와 현대전자가 합병해 탄생한 SK하이닉스는 약 416배(1조4672억원→610조7940억원), 스마트폰과 반도체 사업부를 모두 가진 삼성전자는 약 19배(47조9585억원→938조8546억원) 성장한 반면 LG전자는 약 3배 증가(5조7657억원→16조1583억원)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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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에 거는 기대…새 성장 스토리 될까
대신 LG전자가 성장 동력으로 점찍은 분야는 ‘로봇’이다.LG전자는 미국 소비자가전쇼(CES 2026)에서 가정용 로봇 ‘클로이드’를 공개하며, 가사·생활 영역 전반으로 로봇 활용을 넓히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가전 생태계를 통해 축적한 생활 데이터와 그룹사 간 시너지를 경쟁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류재철 LG전자 사장은 “가정용을 넘어 상업용·산업용 로봇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로봇 회사’로 탈바꿈 하리란 기대감에 지난 11일 LG전자 주가는 전일 대비 23% 급등한 12만7900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LG전자와 관련해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주력 사업 성장이 정체되면서 신사업 투자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며 “로봇 사업화 구상의 구체성이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전 산업 전반이 성장 한계에 부딪힌 만큼, 미래 산업에 대한 과감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