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소설에 현재의 독자가 감응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새로운 단행본으로 출간된 박완서의 작품들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쥬디 할머니』에 실린 단편들은 집필 연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현대적이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은 10편. 문학동네가 한강, 김연수, 편혜영, 성해나, 박상영, 강화길 등 활발히 활동하는 소설가 31명에게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2013, 문학동네, 전 7권)의 단편 중 2~3편씩을 추천받아 골랐다. 지난달 20일 출간 직후부터 『쥬디 할머니』는 각 대형서점의 분야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표제작은 1981년 처음 발표됐는데, '쥬디'라는 서양식 이름을 가진 손주를 귀여워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다. 의학 박사, 공학 박사를 비롯해 할머니의 다섯 자식은 결혼 안 한 막내를 포함해 다들 해외에 산다. 할머니는 혼자 살면서도 번듯한 아파트에 자식들, 손주들 사진을 걸어 놓고 주변의 선망과 질투를 받는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반전이 있다. 할머니를 둘러싼 소문과 함께 소설은 그가 실제로는 "그냥 잡동사니"인 것들로부터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내며 살아왔음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끝난다. 당대 사람들이 느꼈을 모순적인 삶의 모습이 현재의 이야기로도 무리 없이 읽힌다.
박완서의 소설은 콕 짚어 이름 붙이기 모호한 일상의 모순들을 '보통 사람'의 감각으로 또렷이 담아낸다. 전후 '한강의 기적'과 함께 경험한 자본주의 만능의 정서,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전통 등은 우리 사회를 지탱했지만, 뒤따르는 문제도 명확했다. 새로운 독자, 젊은 세대의 독자들은 박완서의 글을 읽고 묘한 기시감에 빠질지 모른다. 모순의 지층이 더욱 불어난 사회에 살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를 살찌우고 괴롭히는 삶의 단면이 그의 글에 숨 쉰다. 그러므로 놓칠 수 없는 '다시 읽기'의 매력이 두드러진다.
마지막 장편 『그 남자네 집』(2004)과 마지막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2010)도 다시 나왔다. 현대문학은 지난달 22일 두 책의 리커버판을 인터넷서점 알라딘 한정으로 출간했다. 박완서 개인의 삶도 엿보인다. 『그 남자네 집』은 한국 땅의 비극적 역사와 함께, 그곳에서 피어난 작가의 첫사랑을 다룬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는 노년의 삶과 생각, 여러 책의 서평 격으로 쓴 글 등이 실려있다. 『쥬디 할머니』에 실린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3)에선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잃은 작가의 심경이 느껴진다.
그의 삶과 문학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박완서 아카이브가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새로 마련됐다. 이곳에서 4월 말까지 이어지는 전시의 제목은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 김수진 학예연구관은 "박완서의 동화집 『마지막 임금님』(샘터, 1980)에 수록된 글의 제목"이라며 "박완서 아카이브가 각박한 세상에서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았다"고 전했다.
『세 가지 소원』(마음산책, 2009)에도 다시 수록된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에는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엄마, 아빠, 할머니가 저마다 준비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할머니는 손주를 위해 자신이 "으뜸가는 선물"로 치는 '이야기 선물'을 준비한다. 박완서의 문학은 그가 오래도록 매만져 온 선물 같다. 기쁘게 풀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