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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박적골의 유년기, 살 떨리는 전쟁 겪은 스무살...소설에 담은 박완서의 삶[BOOK]

중앙일보

2026.02.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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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 개성에서 남서쪽으로 이십 리(약 8km)가량 떨어진 이곳은 지금은 북한 땅이자, 1931년 박완서가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곳이다. 당시 스무 집 채 못 되게 살았던 이 작은 마을에서 양반 행세를 하는 두 집 중 하나가 그의 집안이었다.

그가 박적골을 처음 떠나게 된 것은 여덟 살 무렵. 대담한 결정을 내린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울로 향하는데, 서울살이의 시작은 사대문 안이 아니라 독립문 근처 현저동이었다. 아파트로 빽빽한 요즘과 딴판으로 웃돈을 줘야 지게꾼이 짐을 날라 주는 산동네, 그나마도 남의 집 문간방 한 칸에 세를 든 형편이었다.

이렇게 펼쳐지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와 더불어 그의 대표적이고 본격적인 자전 소설. 널리 알려진 대로 그는 스무 살에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에 합격하지만, 곧바로 전쟁이 터진다. 전쟁통에 그와 가족이 겪는 일은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로 이어진다.

박완서는 이 소설을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그 많던 싱아…』 서문에서) 썼다고 밝혔다. 달리 말해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표현에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은 책장을 넘기면 바로 실감할 수 있다.

특히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는 서울이 인민군 치하에서 국군 치하로 바뀌고 또 바뀌는 가운데 겪는 살 떨리는 체험이, 빈집을 뒤져 먹을 것을 찾고 일자리를 구하고 피난과 귀환과 행상과 장사를 벌이며 살아가는 모습이 지독할 만큼 생생하다. 민족상잔의 전쟁이 무엇인지, 전쟁 속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피부에 와 닿게 한다.

두 소설은 각각 1992년과 1995년 처음 출간됐다. 치밀하게 간직한 젊은 날, 어린 날의 기억과 이를 지금 눈앞에 보여주듯 생동감 넘치게 펼쳐내는 60대의 필력이 모두 감탄스러운 작품이다. 그를 작가로 만든 게 뭔지도 가늠하게 한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그 많던 싱아…』 말미에 그는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고 썼다.

지난해 사진작가 이옥토의 작품으로 표지를 만든 리커버판이 나와 젊은 독자들의 관심을 새로 불러일으켰다.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2012, 세계사, 전 22권)으로도 나와 있다.



이후남([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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