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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반전과 감동의 동계올림픽 드라마

중앙일보

2026.02.13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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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최가온의 하프파이프 금메달 등



신·구 조화 스노보드 종목 선전 잇따라



감동 선사하는 선수들에 뜨거운 응원을


‘각본 없는 드라마’란 스포츠 격언이 이 이상 와 닿을 수 없는 대회다. 대회 중간 반환점에 이른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펼친 활약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선수들의 도전과 성취, 그 과정에 담긴 좌절과 극복의 드라마가 성적의 좋고 나쁨을 뛰어넘은 감동의 드라마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 스포츠계에서 사실상 불모지로 여겨졌던 설상(雪上) 종목이 이번 올림픽 성적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에너지와 활력을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낭보다.

어제 새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종목에서 첫 금메달을 안긴 2008년생 여고생 최가온의 선전은 한국의 올림픽 도전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2년 전 큰 부상을 당해 세 차례나 수술을 받은 최가온은 지난해 말부터 성적을 내며 이번 대회 금메달이 기대됐다. 하지만 결선 1차 시기에서 세 바퀴 회전 기술을 선보이다 하프파이프 상단 턱에 보드가 강하게 부딪치며 굴러떨어졌다. 올림픽 2연패를 한 한국계 미국인 클로이 김은 1차 시기 88점을 기록해 금메달을 예약해 둔 모양새였고 눈발이 거세지며 마지막 3차 시기에서 최가온이 클로이 김을 따라잡기는 어려워 보였다. 절박한 상황에 몰린 최가온은 최고 난도 기술 대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900도와 720도 회전을 선택해 깔끔하게 완성하며 90.25점을 얻어 기적적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부상으로 다리를 절뚝이는 악조건 속에서도 끝까지 도전한 최가온의 성취는 메달의 색깔이나 메달을 따고 못 땄는지의 여부를 떠나 올림픽 정신의 표본을 체현해 보여준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 정신이 나이 어린 대한민국의 10대 선수에게서 발현됐다는 사실이 우리 국민에게는 더없는 감동과 자긍심을 함께 선사했다.

특히 미래 세대뿐만 아니라 노장 세대가 대회 내내 함께 투혼을 발휘했다. 10일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 결선에서는 최가온과 동갑내기인 여고생 유승은이 깜짝 동메달을 따냈다. 8일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는 37세 노장 김상겸이 역시 뜻밖의 은메달을 따내 반전을 더했고, 쇼트트랙의 2007년생 임종언은 어제 남자 1000m 결선에서 마지막 바퀴 직전까지 5위로 처졌으나 극적으로 따라잡아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은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대회 첫 출전 이후 2022년 베이징 대회까지 총 79개의 메달(금 33, 은 30, 동 16)을 따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절대 다수를 빙상에서 따내 종목 편중이 극심했다. 설상 종목은 1990년대 중반 서태지와 아이들의 스노보드 뮤직비디오 이후 인기를 끌었으나 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로 분류되는 어린 선수들은 당차면서도 승부에 연연하지 않는 의젓한 모습이었다. 최가온은 1차 시기 실패 이후 “이를 악물고 경기에 나섰다”면서도 “앞으로 나 자신을 뛰어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스노보드 빅에어 결선 2차 시기에서 고난도 기술을 선보인 후 보드를 집어던진 유승은은 “연습 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기술이었다”며 당찬 모습을 보였다.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종합 14위를 기록한 한국은 이번 대회 금 3개 이상, 톱 10 진입이 목표다. 하지만 메달 개수와 색깔이 전부는 아니다. 최선을 다해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선수들 모두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선수들의 좌절과 환희, 인간 승리의 드라마에 밤잠을 설치며 응원하는 국민들은 짜릿한 보상과 위안을 받았다. 대회에 참가한 선수단 모두에게 다시 한번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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