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경기에서도, 피겨 스케이팅에서도 선수들이 넘어졌다. 같은 경기장에서 열리는 종목에서 연이어 참사가 일어났다.
미국의 코린 스토다드는 지난 10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쇼트트랙 경기에서 하루에만 세 번 넘어졌다. 500m 개인전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데 이어 혼성 계주 준준결승에서도 넘어졌다. 뒤이어 달리던 한국의 김길리는 다행스럽게 피했다. 하지만 준결승에서 또다시 넘어졌고, 바깥쪽으로 밀려나가는 바람에 피할 곳이 없던 김길리가 휘말리고 말았다.
김길리는 넘어질 당시 3위였기 때문에 결승 진출권인 2위 안에 들지 못해 구제되지 못했다. 한국 팬들이 스토더드의 SNS에 몰려가 한글로 비난을 쏟아붓자 댓글이 달리지 않게 닫아놓기도 했다.
사흘 뒤 피겨스케이팅 경기에선 더한 참사가 일어났다.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선 우승후보인 일리야 말리닌(미국), 가기야마 유마(일본)이 모두 실수를 연발했다. 특히 '쿼드 갓(4회전 점프의 신)'이라 불리는 말리닌은 프로그램에서 설정한 7개의 4회전 점프 중 겨우 3개만 소화했다. 쇼트프로그램까지 더한 총점 264.49점은 개인 최고 총점(333.81점)과 69.32점이나 차이가 났다. 프리스케이팅 순위 15위에 그친 말리닌은 8위까지 추락하면서 개인전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말리닌은 울상이 되어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가기야마도 세 번이나 점프가 흔들렸으나 다른 선수들의 부진 덕에 간신히 은메달을 따냈다. 우승후보들이 나선 4조 첫 번째로 연기를 펼친 차준환도 2번째 점프인 쿼드러플 토루프를 시도하다가 크게 넘어져 감점을 받았다. 쇼트프로그램 3위였던 아담 샤오 힘 파(프랑스) 역시 269.27점으로 7위까지 떨어졌다.
금메달 후보로 꼽히지 않았지만 가장 실수를 적게 한 미카일 샤이도로프(카자흐스탄)가 우승을 차지했다. 샤이도로프 자신도 믿겨지지 않는 듯 손으로 입을 감쌌다. 샤이도로프의 최종 득점은 291.58점. 4년 전 베이징 올림픽이라면 동메달에 그칠 점수였지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과거와 달리 고난도 기술로 경쟁을 펼치고, 심리적인 중압감이 컸던 것이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외신들은 "역대 최악의 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올림픽 쇼트트랙과 피겨 스케이팅는 같은 경기장에서 번갈아 진행한다. 그런데 쇼트트랙과 피겨에 필요한 얼음 상태가 다르다. 그래서 경기가 끝나고 종목이 바뀔 땐 정빙을 해야 한다. 점프가 많은 피겨는 빙질이 다소 부드러워야 한다. 반면 빠른 스피드와 급격한 코너링이 필요한 쇼트트랙은 딱딱한 얼음이 제격이다. 최적의 빙면 온도는 피겨는 영하 4도, 쇼트트랙이 영하 7도다. 두께도 다르다. 쇼트트랙은 3㎝, 피겨는 5㎝ 두께의 얼음 위에서 펼쳐진다.
연습과 경기가 끝날 때마다 수시로 얼음 관리를 하는 이유다. 같은 날 몇 시간을 두고 경기가 열릴 땐 더욱 심혈을 기울인다. 지난 10일에는 쇼트트랙 경기 후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다만 얼음을 녹이는 게 얼리는 것보다 어려워서 빙질 관리가 쉽지 않았다.
쇼트트랙 경기 후 선수들은 "얼음이 무르다"고 입을 모았다. 곽윤기 중앙일보 해설위원은 "쇼트트랙용 얼음보다는 피겨용 얼음에 가까울 정도로 무르다. 이러면 스케이트가 얼음에 '달라붙지 않아' 원심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튕겨난다"고 설명했다. 곽 위원을 만난 스토터드도 "쇼트트랙을 위한 얼음판이 아니다"라고 했다. 쇼트트랙 남자 1000m 동메달을 따낸 임종언은 "얼음이 물러서 잘 깨진다"고 했다.
그러나 피겨 선수들도 얼음에 만족하지 못했다. 피겨 경기를 치르기에도 너무 무르다는 평가다. 차준환은 "빙질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경기 시간이 긴 프리스케이팅을 하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날이 덜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 넘어진 직후에 빨리 일어나려 했는데 너무 미끄러져서 일어나기 쉽지 않았다. 주행을 하는데 속도가 평소보다 덜 나는 느낌이 있었다. 경기장이 덥고, 관중들의 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경기장 안은 외투를 입지 않아도 약간의 더위가 느껴졌다.
이를 이겨내고, 극복하는 게 선수의 몫이다. 임종언은 "선수들이 자주 넘어지는 그 구간이 있다. 타보면서 느끼는 건데 확실히 안 좋다. 위험한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 자신감 갖고 나아가면 남들이 불안할 때 저는 더 치고 나가서 한 발 더 앞서있다고 생각해서 신경쓰지 않고 그냥 자신있게 경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말리닌도 "내가 너무 자신있었다. 올림픽의 압박이 상상 이상이었다"며 얼음 탓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