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에는 지은 지 5년이 되도록 전철이 오지 않는 역(驛)이 있다. 김해 내덕동에 있는 장유역이다. 이 때문인지 지난 11일 오후에 찾은 장유역은 대낮인데도 인적이 뜸했다. 역 진입로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쓴 입간판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역 바로 앞 쉼터도 잡풀만 무성했다. 그 사이로 빈 플라스틱병, 라면 용기, 답배갑 등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역 주변도 허허벌판이었다. 흔히 통용되는 ‘역세권’이란 말이 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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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 1% 남기고 6년째 멈춘 ‘부마선’
장유역은 부산과 경남을 잇는 ‘부전~마산 복선전철(이하 부마선)’의 한 구간이다. 2021년 상반기 역사(驛舍) 건물과 내부 시설을 완비했다. 하지만, 정작 부마선이 개통하지 않으면서 이처럼 방치되고 있다. 장유역 완공 바로 직전 해인 2020년 3월 부마선의 낙동1터널 구간에서 지반 침하 사고가 발생하면서다. 이후 부마선 공사는 사실상 멈췄다. 전체 공정율은 현재 99%다. 불과 1%를 남겨둔 채 개통이 지지부진한 것이다. 벌써 6년 가까이 됐다.
부마선 개통을 손꼽아 기다린 지역민 원성은 크다. 부마선이 부산·울산·경남을 ‘1시간 생활권’으로 묶을 핵심 광역철도망이어서다. 부산 부전역에서 김해 신월역까지 32.7㎞ 구간을 신설, 경남 창원 마산역까지 총연장 51.1㎞를 연결한다. 개통하면 마산역에서 부전역까지 기존 1시간30분에서 30분대로 이동 시간이 줄어든다. 곧이어 부전역에서 동해선으로 환승하면 울산까지도 1시간대다. 총 사업비만 1조5766억원(민간투자 1조4303억원 등)이다.
부산에 살면서 창원에서 일하는 이모(30대)씨는 11일 중앙일보에 “부전역에서 전철을 타면 창원까지 30분이면 도착할텐데 개통이 안 돼 3년째 자가용으로 출퇴근 중”이라며 “출·퇴근에만 (차량 정체 등으로) 1시간30분씩 왕복 3시간이 걸린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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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개통만 기다려”…국토부-사업자 ‘이견’에 지연
사고 복구 작업은 막바지라고 한다. 그럼에도 개통 시기는 불투명하다. 국토부와 사업시행자(스마트레일㈜)가 사고가 난 터널의 피난 통로 공사를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어서다. 기존 원안에 국토부와 사업시행자는 낙동강을 아래를 지나는 상·하행 지하 터널을 피난 통로로 연결, 한쪽 터널에서 사고가 나면 승객이 반대편 터널로 대피하게 할 계획이었다.
현재는 사업시행자가 피난 통로 대신 안전문 형태의 격벽형 대피 통로를 만들어 사고 발생 시 이 통로를 통해 승객이 인근 역까지 대피하는 방안을 국토부에 요구 중이다. 이곳 피난 통로 4개 중 아직 짓지 않은 2개의 시공 구간이 앞서 지반 침하 사고 지점과 지반 여건이 비슷해 또 다시 붕괴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반면, 국토부는 격벽형 대피 통로가 우리나라 철도 방재 시스템에 도입된 적이 없다는 등 이유로 원안을 고수 중이다. 시공 기준·매뉴얼도 없어 안전성 여부를 담보하기 어렵단 것이다.
또 이 대안을 받아들일 경우, 국토부가 사업시행자에게 막대한 복구공사비를 물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란 뒷말도 나온다. 현재 사업시행자는 지반 침하 사고가 공법 문제가 아닌 지반 불량이란 ‘불가항력적 사고’였단 이유로 국토부에 1조원 규모의 복구공사비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여서다. 국토부가 대안을 허락하면 불가피한 사고였단 점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한다.
국토부는 지난 5일 사고조사위원회를 꾸려 당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사고 발생 6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나온 결정이어서 곧장 ‘뒷북 행정’이란 비판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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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수도권이라도 이럴 거냐”…李 “국토부, 속도 내 달라”
이처럼 부마선 개통이 장기간 표류하면서 부울경을 ‘광역경제권’으로 묶는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사고 복구 공사 등으로 수차례 공사 기간이 연장됐는데,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또 실시계획을 변경(20차)해 공기가 올해 12월까지로 1년 더 늘었다.
경남도는 ‘부분 개통’을 요구하고 있다. 개통 가능한 마산역∼부산 강서금호역 구간이라도 먼저 운행하자는 얘기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지난달 12일 올해 첫 확대간부회의에서 “특정사고 지점 때문에 6년째 방치되는 것은 지역민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수도권이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도 부마선을 언급했다. 지난 6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경남 타운홀 미팅’에서다. 이곳에 참석한 김해시민이 “하루빨리 개통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하자, 이 대통령은 “국토부는 해결하는 길을 알아보고 비용 문제가 있다면 선 개통하고 후 정산하는 등 순서를 바꿔서라도 속도를 내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