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핵심 배경으로 평가받던 ‘명태균 공천개입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들이 1심 재판에서 연이어 무죄를 선고받았다. 공천 청탁을 받은 김건희 여사와 공천을 청탁한 명씨에게 서울중앙지법·창원지법 재판부가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은 청탁과는 무관하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리면서다. 이같은 재판부 판단에 따라 2022년 재보궐 선거에서 공천장을 거머쥔 김영선 전 의원 역시 연쇄적으로 1심에서 혐의를 벗었다.
공천개입 의혹은 2024년 초부터 비상계엄 선포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과 김 여사를 사실상 벼랑 끝으로 내몰며 ‘명태균 게이트’로 비화한 사건이다. 동시에 김 전 의원 이외에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진태 강원지사, 홍준표 전 대구시장 등 국민의힘 소속 거물급 정치인 역시 명씨의 힘을 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국민의힘을 뒤흔들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김건희 특검을 출범시킨 핵심 동력 역시 명태균 공천개입 의혹이었다.
특히 2024년 10월 민주당은 윤 전 대통령이 명씨에게 “내가 김영선이를 좀 (공천)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하는 통화 녹취를 공개하며 사건을 맡은 검찰 전담수사팀과 김건희 특검팀의 수사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명씨가 윤 전 대통령 부부에게 공천을 청탁한 것으로 보이지만, 김 전 의원이 공천을 받은 것은 청탁과는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청탁과 공천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재판부의 판단은 김 전 의원이 자신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공천장을 거머쥐었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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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균 ‘여론조사 뿌리기’ 영업방식
김건희 특검팀이 공천개입 의혹과 관련 김 여사에게 적용한 혐의는 정치자금법 위반이었다. 김 여사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명씨에게 대선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받아본 것은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데 소요된 2억7440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였다. 재판부 역시 김 여사가 명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받아본 사실은 인정했다.
문제는 명씨가 실시한 여론조사는 김 여사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명태균은 자신이 운영하던 미래한국연구소의 영업활동 일환으로 정기적으로 실시하던 여론조사 결과를 피고인(김 여사) 부부를 비롯해 여러 사람에게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실제 명씨는 정치인을 비롯한 거물급 인사들에게 접촉할 때 여론조사 결과를 제공하며 신뢰를 쌓곤 했다. 의뢰받지 않은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정치인들에게 돌려가며 정보를 제공하는 이른바 ‘여론조사 뿌리기’ 영업 방식이었다. 수차례에 걸쳐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한 뒤 해당 정치인으로부터 여론조사 실시 계약을 이끌어내기도 했다는 게 미래한국연구소 소장이었던 김태열씨의 법정 진술 내용이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김 여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명태균은 영업과 정치 판세를 읽고 분석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할 동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명씨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장이 심하고 다소 망상적인 사람으로 보여 ‘공천은 피고인의 선물’이라는 진술을 그대로 믿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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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 막강했지만, 공천 개입 단정 못 해"
명씨와 김영선 전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판결한 창원지법 재판부 역시 “명씨의 활동과 노력이 김영선 공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여지는 있다”면서도 명씨의 개입으로 공천이 이뤄졌다는 점을 단정할 순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여지’를 언급한 배경은 전·현직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등 정치인들과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명씨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다만 명씨가 2022년 재보궐 선거 당시 윤 전 대통령 부부와 관계를 유지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김 전 의원의 공천이 청탁 덕분이었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김 전 의원이 당선된 이후 매달 국회의원 세비의 절반가량을 명씨에게 지급한 ‘세비 반띵 의혹’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공천 개입의 대가가 아닌 급여라고 봤다. 김 전 의원이 건넨 돈은 “김 전 의원 당협사무소에서 총괄본부장으로 일하던 명씨는 지역구 정치활동을 실질적으로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이에 대한 노무 제공의 대가”라는 것이다. 2023년 7월 30일 명씨가 김 전 의원에게 “돈 몇 푼으로 날 조롱하지 마세요. 내가 일한 것 제대로 계산해서 청구할 테니 계산 똑바로 해주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낸 것은 이같은 재판부 판단의 핵심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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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해요?”→“김영선으로 나왔습니다”
재판부가 명씨의 청탁과 김 전 의원의 공천이 무관하다는 결론을 도출한 데는 2022년 5월 10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 회의 내용도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당시 회의에선 창원의창 지역구 공천 문제가 다뤄졌는데 ▶기초단체장 출마 후 낙선자 공천 배제 ▶2022년 대선 당시 윤 전 대통령 당선 기여도 ▶경쟁 상대(당시 김지수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맞춘 여성 후보 맞불 전략 등이 공천 기준으로 논의됐다.
당시 김 전 의원의 경쟁자로는 김종양 국민의힘 의원이 거론됐다. 하지만 김 의원의 경우 “지역에서 연고가 약하다”“지역에서 한 게 없다” 등 공관위원들 사이에서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뤘다. 결국 당시 공관위원이자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이었던 홍철호 전 정무수석이 “부총장으로서 우리끼리라도 투표하는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고, 실제 투표를 거쳐 김 전 의원은 3분의 2 이상의 표(무기명 투표)를 획득하며 단수공천을 받았다.
재판부는 또 당시 윤상현 공천관리위원장이 윤 전 대통령에게 김 전 의원에 대한 공천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았지만, 공관위원들에겐 이같은 사실을 숨긴 채 공천 심사를 진행했다고 봤다. “윤석열이 윤상현에게 김영선의 공천을 이야기한 바는 있으나, 윤상현, 피고인(김 여사) 부부 등이 다른 위원들에게 김영선을 공천해 달라고 이야기한 것은 없었다”면서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의 이같은 판단은 창원지법 재판부의 “김영선에 대한 공천은 명씨의 활동이나 노력과 관계없이 공천관리위원회의 독자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여지도 상당하다”는 판시와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