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시립서북병원을 찾아 최영아(56) 내과전문의의 연구실 문을 연 순간, 기자의 뇌리에 박힌 이미지다. 그의 연구실 벽을 촘촘하게 채우고 있는 그것은 분명 장미꽃의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토록 거칠고 투박한 꽃잎이라니…. 기자의 놀란 눈을 본 최 전문의는 웃으며 말했다.
" 아, 이거요? 택배 박스, 버려진 포장지, 비닐 같은 것들로 제가 만든 거예요. 멀쩡한데 버리면 너무 아깝잖아요. 쉬고 싶을 때마다 한 송이씩 접었어요. "
연구실을 가득 채운 이 꽃들은 대부분 그가 직접 접었다. 나중엔 그의 취미를 알게 된 지인들이 접어 선물해 준 것도 섞였다. 대다수의 사람이라면 무신경하게 지나쳤을 버려진 물건들은 그의 손끝에서 가장 화려한 장미로 변신해 그의 진료실을 밝히고 있었다. 마치 그의 진료가 그랬던 것처럼.
‘길 위의 의사’ ‘노숙인의 슈바이처’. 그는 의사로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이렇게 불렸다.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자격증을 딴 2001년, 첫 일터로 노숙인을 위한 무료병원 ‘다일천사병원’을 택했고, 이후로도 영등포 요셉의원,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 등을 거치며 노숙인들을 보살펴 왔다.
현재는 서울시립서북병원(이하 서북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서북병원은 인근 노숙인 거주 요양시설 ‘은평의 마을’ 등과 연계해 노숙인을 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 전문의는 여성 노숙인 쉼터 ‘마더하우스’를 설립했고, 취약계층에 의료와 생활지원 사업을 펼치는 비영리법인 ‘회복나눔네트워크’를 만들어 청소년을 돕고 있기도 하다.
그런 그이기에, 그의 방을 꽉 채운 ‘폐지 장미꽃’이 예사로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 25년간 누군가에게 버려진 이들의 곁을 지켜온 최 전문의의 눈에는 그의 환자들이 그대로 두기엔 너무 아까운, 그래서 자기 손으로 직접 피워낸 이 귀한 장미꽃들처럼 보였던 게 아닐까.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 당신에게 노숙인은 어떤 존재입니까? "
✅ 흙탕물에 밥 말아 먹는 사람들, 충격이었다
Q : 처음 노숙인을 만난 건 언제였어요?
중학생 때 신촌에 살았는데, 주일마다 서울역 인근 교회를 걸어다녔어요. 그때 서울역 근처엔 온통 노숙인이었어요. 어린아이를 안고 온가족이 길바닥에서 사는 사람들이 지상부터 지하도까지 꽉 들어차 있었죠. 당시엔 그저 ‘저 사람들은 왜 길에 있을까’ ‘아프면 어떡하지’ ‘배고프겠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잊어버렸죠.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고, 선배 따라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충격적인 노숙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게 됐죠.
Q : 어떤 봉사활동을 하셨던 거예요?
의예과 2학년 여름방학 때였어요. 청량리역 근처 노숙인들에게 밥을 나눠주러 갔어요. 음식통을 들고 청량리 뒷골목을 지나서 가야 했거든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거기가 588이라고, 다 집창촌이었어요. 윤락 여성들이 자원봉사하러 온 남자들한테까지 저돌적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통에 여자 봉사자들이 막아서고 그랬죠. 그렇게 지나면 쌍굴다리가 나와요. 그곳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노숙인이 있었고, 그 참혹함에 한참 넋 놓고 서 있었어요.
(계속) 최영아 전문의는 그날 본 모습을 ‘충격적’이라고 표현했는데요. 도대체 그곳에서 어떤 모습을 보았던 걸까요? 진료 중 노숙인에게 욕 먹고, 멱살 잡히는 게 무섭지는 않았을까요?
최 전문의는 “노숙인의 삶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만난 노숙인 중에는 중소기업 사장, 대기업 임직원, 심지어 의사 출신도 있었다고 하네요. 평범한 삶을 살던 이가 노숙인이 되는 핵심 원인으로는 ‘이것’을 꼽기도 했죠. ‘고소득 전문직’의 안전한 삶을 포기하고, 노숙인 곁으로 다가간 최 전문의, 그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