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그날 새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김상겸(37)의 경기를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결승전 때는 가슴이 쿵쾅거렸고, 0.19초 차이가 났을 때는 너무 안타까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웃통을 벗고 환호하는 금메달리스트 벤야민 카를(오스트리아)를 안아주는 김상겸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다음 날 아침, 김상겸 뉴스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나이는 숫자 등등 김상겸 발(發) 감동 뉴스가 이어졌다. 기자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 건 김상겸·박한솔(31) 부부 스토리였다. 시상식 후 부부는 첫 통화에서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부부 스토리는 며칠간 온·오프 라인을 달궜다.
박한솔은 김상겸이 메달을 딴 다음날 중앙일보 인터뷰〈중앙일보 2월 10일자 2면〉에서 가슴 아픈 얘기를 꺼냈다. 4년 전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통화에서는 슬픔의 눈물을 쏟았단다. 그때 박한솔이 결혼을 결심했다니, 24위로 예선 탈락한 남자를 끌어안았다. 박한솔은 "'이 사람이 슬퍼할 때 위로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관계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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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최고의 행운은 아내와의 결혼"
김상겸의 발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이 이것이었다. 그는 알프스 설산 위에서 이렇게 멋진 말을 남겼다.
김상겸 부부 스토리를 본 후 국가데이터처의 부부 관련 자료를 뒤졌다. 한국인 부부들의 현주소를 찾기 위해서다. 인구총조사(2024)의 가구 부문 데이터를 얼추 따져보니 부부는 1000만쌍이 약간 넘는 듯하다.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저마다 사정이 다를 테지만 대체로 한국의 부부는 김상겸 부부 못지않게 애틋한 듯하다. 우선 가족실태조사(2023)를 보자. 배우자와 친밀하다고 느끼고 있을까. 응답자의 79%가 대체로 그렇거나 매우 그렇다고 한다. 남녀 차이가 거의 없다. 83.1%는 배우자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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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의 의미는?
정서적 지지자일까. 79.1%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 정도면 대다수 부부가 서로 정서적 친밀감, 만족감을 주는 지지자라고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서로 부양하며 생계를 함께하는 동반자(78.3%), 아프거나 늙어서 돌봐주는 동반자(79.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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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의지가 되는 사람은 누굴까.
배우자가 있는 응답자의 88.8%가 배우자를 꼽았다. 아들(2.5%), 딸(2.4%)이 아니다. 아버지(1.1%), 어머니(2.6%)도 아니다. 형제(자매)·친구·동료·이웃·성직자 등을 다 더해도 1.8%에 불과하다. 의지할 데는 미우나 고우나 남편과 아내이다.
미혼인 사람의 67.6%는 어머니를 들었다. 사별한 사람은 아들과 딸, 이혼하거나 별거 중인 사람은 딸과 아들, 어머니 순이다.
최근 기자는 두 아내의 눈물을 봤다.
한 명은 60대 초반 부부. 차를 운전하던 남편이 왼쪽 마비를 증세를 느껴 119 구급대를 불러 병원에 실려 갔다. 그는 아내에게 가장 먼저 이 사실을 알렸다. 아내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새벽 1시께 병원으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내내 울었다고 한다. 그날 병원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다른 한 명은 40대 부부. 남편이 동네 작은 병원에서 '암 의심'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큰 병원으로 가시라"고 했단다. 아내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아직 암 확진을 받은 것도, 암의 진행 정도가 나온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
두 부부의 예를 보면 아플 때 걱정하고 손잡아주고 돌봐주는 동반자임이 틀림없다.
두 부부의 경우, 아픈 사람이 아내라고 해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물론 남편이 속으로 울 가능성이 크지만.
놀랍게도 배우자와 갈등, 의견 충돌 경험이 없다는 응답자가 61%나 됐다.
재미있는 문항이 있다. '배우자는 함께 사는 사람일 뿐 나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다'
여기에 대해 34%는 전혀 그렇지 않고, 33%는 별로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보통이라는 답이 16% 정도. 그런데 이 질문에 동의한 사람이 17% 정도가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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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관계 만족도는 얼마나 될까.
가족실태조사에는 66.2%가 만족한다. 남녀에 차이가 있다. 남성은 만족이 70.1%인데 여성은 61.9%이다. 2010년 만족 응답(56.9%)보다 올랐다.
사회조사(2024)는 어떨까.
좀 더 높다. 만족 응답자가 75.7%이다. 2014년 65.2%, 2020년 69.3%에서 점차 상승해 왔다.
설날 연휴가 이어지고 있다. 가족이 모이고 부부가 같이하는 시간이 많다. 김상겸의 애틋한 부부애를 보면서 옆자리의 배우자를 한 번이라도 돌아보자.
명절 집안일을 같이 분담하고, 운전대에 앉은 배우자의 어깨를 주물러 주자. 김상겸은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은메달을 박한솔 목에 걸었다. 그 메달은 은이 아니라 다이아몬드 메달 그 이상일 것이다. 이번 기회에 배우자의 목에 '마음속의 은메달'을 걸어주는 게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