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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서울 한복판부터 전국 곳곳서 만나는 이순신

중앙일보

2026.02.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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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혼란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올리는 위대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이순신 장군입니다. 잊을 만하면 이순신 관련 영화와 드라마가 방영되며 이순신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지 않아요. 우리나라의 국격이 높아진 오늘날에는 세계 각국에서 이순신을 알고 놀라는 현상도 유튜브 등 SNS를 통해 볼 수 있죠. 보통 전쟁의 영웅으로만 이순신을 기억하고 막연하게 알고 있기도 하는데요. 이번 설날 연휴와 봄방학에는 애국충정의 영웅 이순신부터 인간 이순신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1편에서 이순신을 더욱 깊게 만나봤다면 이번엔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가까운 곳부터 우리 주변에서부터 전국에 퍼져 있는 애국·애민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이순신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① 구국의 영웅 충무공부터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까지 입체적으로 만나요
② 서울 한복판부터 전국 곳곳서 만나는 이순신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이순신에 대해 알아보고 만날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서울 광화문의 관광 명소, 시민공간에 충무공의 이야기를 담은 공간이 있는 것 아셨나요. 세종대왕 동상 뒤편 출입구 혹은 세종문화회관 지하로 가면 세종이야기·충무공이야기 전시관이 있어 두 인물의 업적과 생애를 자세히 알아볼 수 있죠.
이순신을 다시 알아보는 시간을 가진 홍원교·이서준·정하은(왼쪽부터) 학생기자가 거북선 모형 앞에 섰다.

충무공이야기는 이순신의 삶과 리더십을 생생한 체험과 함께 소개하는 전시공간이에요. 백지선 도슨트가 “이순신은 1545년 서울 건천동 부근에서 태어났는데, 현재의 충무로입니다. 충무로라는 지명도 이순신의 시호 충무공에서 따왔다는 것을 알 수 있죠”라고 이순신의 일대기에 관해 설명했어요.

이순신은 10년 동안 무예를 갈고닦아 10년 만에 무과 시험에 급제했습니다. 한 번에 시험에 합격한 게 아니라 10년 동안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조금 놀랍기도 했죠. 시험에 합격하고 받은 무과급제교지도 소개됐어요. “이 교지는 당시 이순신이 29명 중에 14등을 했고 전체 평가 4등으로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적혀 있는 자격 증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전시공간 충무공이야기에선 이순신의 삶과 리더십을 생생한 체험과 함께 소개한다.

1977년 정형모 화백이 그린 구군복 차림의 영정이 눈에 띄는데요. 무관이 쓰던 모자 전립을 쓰고 전투 지휘 때 쓴 지휘봉 등채를 든 모습입니다. 앞쪽에 동그란 만두 주머니 같은 모양의 동글납작한 나무패인 발병부도 기억해야 해요. 군대를 동원하는 표지거든요. 임금과 장군이 반씩 나눠 갖고 군사가 필요할 때 이 반쪽 나무패와 상소문을 올리면 임금이 확인하고 나머지 반쪽 나무패와 군사를 보내면서 서로 확인했다고 합니다. 현장엔 구군복을 입고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체험도 마련됐죠.

조선의 함선에 대해 알아보는 공간엔 주력 전투함 판옥선에 대한 설명이 자세합니다. 배 내부 공간을 2·3층으로 구분하여 설계해 노를 젓는 격군과 함포를 발사하는 포수가 서로 방해받지 않고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고 해요. 판옥선의 등장으로 상대적으로 작고 견고함이 떨어지는 일본 군선으로부터 조선의 바다를 지킬 수 있었죠.
『난중일기』와 임진왜란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는 섹션을 통해 이순신의 삶과 정신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판옥선을 기반으로 제작된 돌격선 거북선은 배 위를 판자로 덮고 또 그 위에 촘촘히 철촉을 꽂아 검술에 능했던 일본군이 배에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건조했어요. 거북선의 앞뒤와 양옆에 강력한 화력을 지닌 총통을 설치해 일본군의 공격에 사방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했죠. 거북선의 노는 선체 안쪽에 배치돼 다른 배와 충돌해도 부딪치지 않고 계속 노를 저을 수 있습니다.
충무공이야기 전시관에 있는 거북선 안으로 들어가면 격군과 화포장 인물 모형, 장령방 등을 볼 수 있다.

승선 체험을 할 수 있는 거북선 모형을 본 소중 학생기자단이 신나게 거북선에 올라갔어요. 내부 구조와 시설은 해군사관학교의 거북선 모형을 기준으로 했고 규모는 실물을 55% 크기로 축소한 것으로, 원래 거북선에는 약 150여 명이 탈 수 있었다고 해요. 서준·하은·원교 학생기자는 격군과 화포장 인물 모형, 화장실, 장군들이 전투 회의를 했던 장령방 등을 살펴보며 신기해했죠.
판옥선 조립과 전투 진형 퍼즐, 격군 노 젓기 및 돛·무기 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판옥선 조립과 전투 진형 퍼즐, 격군 노 젓기 및 돛·무기 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또 판옥선 조립 체험, 격군 노젓기 체험, 전투 진형 퍼즐 체험, 돛 체험, 수군 무기 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는데요. 하나씩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죠. 임진왜란에 대한 내용과 『난중일기』, 해전 무기와 유물을 소개하는 섹션 등을 쭉 살펴보고 나니 이순신의 삶과 정신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충무공이야기 전시관에는 조선시대의 뛰어난 기술력을 알 수 있는 화살 신기전과 화차 등의 모형도 전시됐다.

전시장을 나선 소중 학생기자단은 광화문광장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섰습니다. 오늘 하루 이순신과 함께하며 더 자세히 알게 됐고 존경하는 마음도 더 커졌죠. “인간 이순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어요.”(서준) “이순신의 ‘인생’을 훑어볼 수 있었습니다.”(하은) “강한 책임감과 희생정신에 많은 감동과 울림을 받았습니다.”(원교)
우리 주변에서부터 영웅 이순신과 인간 이순신에 대해 잘 알아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아간 소중 학생기자단.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
전국 곳곳에 이순신의 발자취를 따라 가볼 만한 곳이 꽤 많은데요. 설 연휴와 봄방학을 맞아 좀 멀리 여행을 떠나봐도 좋겠죠. 그중 우선 추천하고 싶은 곳이 충남 아산입니다. 아산은 이순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제2의 고향으로 서울에서 아산으로 이사 와서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무예를 닦은 곳입니다. 현충사와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묘소까지 모든 곳을 가볼 수 있죠.
아산 이충무공 묘. 부인 상주 방씨와의 합장묘다.
이순신 고택 옆에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이순신이 활을 쏘던 자리다. 주변에는 이순신의 장인·장모와 셋째 아들 이면, 후손들의 묘소가 있다.

이순신의 얼이 깃든 고즈넉한 사당, 위패를 모신 현충사는 1706년 처음 세워졌어요. 현충사에 모셔진 이순신의 영정은 장우성 화백의 1953년도 작품으로 1973년에 국가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죠. 건물 안쪽 벽에는 이순신의 일생 중에 특기할 만한 사건 10가지를 묘사한 그림 십경도(十景圖)가 있어요. 현충사에서는 이순신의 탄신일을 기념하여 매년 4월 28일 정부 주관으로 제전을 올립니다.
사당인 현충사에서는 해마다 다례 행사를 개최한다.
1707년 숙종이 내린 현충사 현판은 충무공이순신기념관에서 전시한다.

이순신 고택도 볼 수 있는데 전통적인 한식 목조건물로서 안채만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죠. 대대로 종손이 살아오다가 1969년 현충사 성역화사업 때 경내의 존엄성을 고려해서 이주했어요. 고택 뒤편에는 가묘(家廟)가 있는데 이곳에는 현 종손의 4대조까지의 신위(神位)와 함께 이순신의 신위가 중앙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순신이 상주 방씨와 결혼한 21살부터 살았던 고택.

이순신은 전사 후 마지막 통제영이었던 고금도에 모셔졌다가, 이듬해인 1599년 2월 11일 아산의 금성산에 모셔졌죠. 그리고 전사 16년 뒤인 1614년(광해 6년)에 지금의 어라산에 이장되었습니다. 묘소는 부인 상주 방씨와 합장묘로 조선시대 고관묘의 전형적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1970년대 성역화사업 당시 왕릉과 같이 곡장을 둘렀죠.
아산 이충무공묘 진입로 입구에는 이순신 외손인 홍우기가 청해 김육이 쓴 신도비가 있다.

묘소에는 신도비 2기가 있는데요.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이 죽었을 때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그의 사적(事蹟), 즉 생애를 새겨 넣은 비로 조선시대에는 2품 이상에 한해 세워졌어요. 묘소 입구에 있는 것은 외손자 홍우기가 효종 때 영의정 김육에게 청하여 비문을 지어 만든 것이고, 봉분 동남쪽 아래에 있는 신도비는 정조가 친히 글을 내려서 만든 거죠. 정조는 역대 어느 임금보다도 이순신 장군을 추모하는 정이 깊었던 군주입니다.
정조가 이순신에게 영의정을 증직한 후 손수 글을 지은 정조 어제 신도비.

2011년 4월 28일 개관한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은 충무공 관련 유물과 임진왜란 당시 해전 사료를 수집하고, 이를 전시·교육하기 위한 역사 테마관입니다. 상설전시실1에서는 현충사 건립 등 연혁, 이순신의 유품, 사후 기념, 연도별 활동, 일화, 주변 인물 등을 비롯해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난중일기』를 소개해요.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 시기 이순신 장군의 활동을 보여주는 상설전시실2에서는 천자총통 등 화포, 판옥선·거북선 등 군선 모형, 다양한 관련 영상, 『임진장초』 『서간첩』 및 이순신 장검 등의 유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지역 유림들이 이순신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건립한 현충사 유허비.

서울-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이순신은 1545년 서울에서 태어났죠. 관련 안내판이 들어선 곳은 서울시 중구 인현동 1가 31-2 신도빌딩 앞으로, 2017년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팀이 충무공 탄신일(4월 28일)을 맞아 설치했어요. 명보아트홀 앞에도 1985년 서울시에서 제작한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표지석이 있죠.

전남 해남과 진도

1597년 음력 9월 16일, 이순신이 13척(이순신이 올린 장계의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에, 『선조실록』에 나온 김억추가 가져온 배 1척 추가)의 배로 왜선 133척을 격파한 명량대첩 유적지 우수영국민관광지가 있어요. 해남과 진도 사이의 좁고 긴 바닷길 울돌목은 ‘바위가 운다’는 뜻으로 한자로 쓰면 ‘명량(鳴梁)’이에요. 울돌목에서 예나 지금이나 파도가 회오리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죠. 진도엔 임진왜란 당시 전략을 세우고 수군을 정비해 명량대첩을 이끌어 낸 벽파정과 이충무공 전첩비가 있습니다.

전남 여수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삼았던 진해루가 정유재란 때 불탄 뒤 1599년 세운 75칸의 대규모 객사인 진해루가 있고, 여기서 조금 내려오면 이순신 동상과 거북선 모형을 전시한 이순신 광장이 있습니다. 여수시 웅천동에는 이순신 어머니인 변씨가 살았던 고택도 복원돼 있죠.

경남 남해

왜군의 유탄에 맞아 숨을 거둔 뒤 시신을 옮긴 관음포에 2017년 4월 28일 이순신 바다공원이 문을 열었어요. 여기 앞바다가 바로 임진왜란 최후의 전투인 노량해전이 벌어진 격전지죠. 사당인 충렬사도 빠트리지 말고 방문하세요.

경남 통영과 한산도

통영에는 이순신의 위업을 기리는 동시에 삼도수군통제사영으로 쓰기 위해 지은 세병관과 이순신 사당인 충렬사가 있어요. 한산도는 임진왜란 최대 해전인 한산대첩이 이뤄졌고, 삼도수군통제영인 한산진이 설치됐던 섬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군사 작전을 계획하고 지휘하던 제승당과 왜적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한 망루(수루), 영정을 모신 충무사, 이순신이 활을 쏘던 한산정(사정) 등의 유적지가 있죠.
이서준·정하은·홍원교(왼쪽부터) 학생기자가 애국충정의 영웅 이순신부터 인간 이순신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를 취재했는데, 기획 의도가 이순신의 드러나지 않은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인 만큼 개인적인 일이나 이순신이 겪은 어려움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었죠. 이순신도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게 슬퍼하고, 기뻐하는 이야기들을 보며 ‘인간’ 이순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어요. 광화문광장에 있는 충무공이야기 전시관도 방문했는데, 이곳에서는 이순신의 업적 위주로 볼 수 있었어요. 특히 거북선 모형은 진짜 같아서 놀랐죠. 기회가 된다면 이순신이 활약한 한산도·명량·노량해전이 치러졌던 지역도 모두 가보고 싶습니다.
- 이서준(경기도 평촌중 1) 학생기자

‘임진왜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이순신이 아닐까요. 그만큼 저도 친숙하게 알고 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이순신은 7년 동안 임진왜란에서의 전투들에서 많은 승리를 가져온 ‘장군’이었지, 이순신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었는데요. 이번 취재를 통해 찾아보지 않으면 잘 알지 못하는 이순신의 ‘인생’을 훑어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이순신도 무과 급제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처음부터 수군을 맡은 것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저런 삶을 살고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지?’ 하며 우러러보는 위인이지만, 실제로는 여느 사람들처럼 실패하고 고민했다는 말이죠. 이 말을 깊이 새기며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게 조금 더 노력해 보는 건 어떨까요.
- 정하은(서울 노원중 1) 학생기자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는 무과에 급제한 뒤 장군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지켜낸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순신의 삶과 업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어요. 『난중일기』에는 전쟁의 상황뿐만 아니라 부하들을 걱정하는 마음과 장수로서의 고민이 담겨 있어 위대한 영웅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을 느낄 수 있었죠. 처음부터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민하고 준비하며 나라를 지켜냈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저 또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의 노력을 하여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 홍원교(경기도 늘푸른중 2) 학생기자



한은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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