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쇼트트랙 여자 국가대표 김길리(22·성남시청, 700크리에이터스)는 서울 성내초 4학년이던 지난 2014년 최민정(28)·심석희(29)와 함께 찍은 사진을 여전히 갖고 있다. 당시 한국체대 빙상장에서 훈련하다 현장을 방문한 두 언니를 처음 만난 김길리는 “너무 떨려 말도 못 붙였다. 두 언니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해 올림픽 무대를 밟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12년 전 그 꼬마는 최민정·심석희와 함께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 무대를 누비고 있다. 김길리는 16일(한국시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여자 1000m 동메달을 땄다. 준결승에서 상대 손에 밀려 넘어져 어드밴스를 받아 결승에 오른 김길리는 결승선 3바퀴를 남기고 인코스를 노려 1위로 올라섰다. 산드라 펠제부르(네덜란드), 코트니 사로(캐나다)에 역전을 허용하며 1분28초614의 기록으로 3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생애 첫 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따냈다.
앞서 김길리는 지난 10일 혼성 2000m 계주 준결승에서 미끄러진 커린 스토더드(미국)와 정면충돌해 고꾸라졌다. 충돌 다음날에 팀훈련을 소화한 김길리는 살짝 멍이 든 오른팔을 보여주며 “출혈이 있었지만 찔끔 난 수준이다. 충돌 당시엔 세게 부딪쳐 골절까지 걱정했지만, 시간이 지난 뒤 너무 멀쩡해 나도 놀랐다”며 활짝 웃었다.
김길리는 딱 MZ세대다. 방송인 주현영과 비슷한 말투에 털털한 성격이다. 사복은 ‘힙’하게 원래 사이즈(스몰 90)보다 하나 크게 입는다. 좌우명은 ‘한번 해보자’다. 어차피 할 일이면 제대로 해내자는 의미다. 빙판에서 긴장될 땐 “차라리 빨리 스케이트를 타자”, “라운드를 올라갈 수록 즐기자” 생각한다. MBTI(성격유형검사)는 ENTP로 두뇌 회전이 빠르고 대담한 성격이다. 늘 ‘웃는 상’인 그는 그냥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훌훌 털어낸다.
실력도 월드클래스다. 2023~24시즌 ISU 월드컵 종합 우승자에 주어지는 ‘크리스털 글로브’를 수상했다. 젊은 세대들이 열광할만한 캐릭터이다 보니, 기업들의 후원이 쏟아졌다. KB금융그룹과 손을 잡았고 스포츠 브랜드(오클리)로부터 ‘금빛 질주’와 잘 어울리는 금빛 고글을 지원 받는다. 피겨 스타 알리사 리우(미국) 등과 ‘팀 삼성 갤럭시’ 홍보대사로도 선정됐다. 패션 뷰티 업계도 그를 주목한다.
김길리는 걸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와 스포츠브랜드(나이키) 광고도 함께 찍었다. 그의 사진이 여의도 쇼핑몰 등 서울 곳곳의 대형 전광판에 내걸렸다. 김길리는 대회를 앞두고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인형 같이 생긴 카리나 언니를 보고 말문이 턱 막혔다. (최)민정이 언니와 (심)석희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 만큼이나 특별한 경험이었다”며 웃었다.
김길리는 트랙 한 바퀴(111.12m)를 8초4에 주파한다. 진천선수촌을 운전해서 내려갈 때도 속도를 즐긴다. 수퍼카 람보르기니처럼 빨라 ‘람보르길리’라 불린다. 지난해 3월 람보르기니 국내 행사에 초청 받아 시승도 해봤다.
레그 프레스 100㎏ 이상을 드는 그는 새벽 5시30분에 기상해 오후 6시까지 빙상과 지상 훈련을 이어간다. 키가 1m61㎝로 크지는 않지만 허벅지가 허리둘레와 비슷할 만큼 탄탄하다. 레그 프레스 100㎏ 이상을 든다. 시원시원하고 패기 넘치는 요즘말로 ‘테토녀(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과 여자의 합성어로, 주도적이고 당당한 여성을 뜻함)’다. 김길리는 올림픽 동메달을 딴 뒤 눈물을 보였다. 그만큼 올림픽 메달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KIA 타이거즈 팬인 그는 훈련을 마친 뒤 프로야구 경기를 보는 게 낙이다. 지난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직후엔 엄지와 검지, 새끼 손가락을 함께 펴는 KIA 김도영의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김길리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우도환이다. 김길리는 이번 대회에서 주종목 여자 1500m와 여자 계주를 남겨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