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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바다는 굴밭, 섬은 꽃밭…올챙이같이 생긴 섬, 벌써 봄

중앙일보

2026.02.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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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의 Wild Korea 〈33〉 통영 두미도
두미도 천왕산 가는 길에서 굽어본 바다. 봄 기운이 물씬 풍긴다. 노대도 옆에 자리한 비상도, 사이도, 납도, 막도 등 작은 섬들이 윤슬과 어우러졌다.
두미도를 다녀왔다. 579개에 달하는 경남 통영의 섬 중에서도 인적 뜸한 섬이다. 뱃길이 멀긴 해도 강원도 두메산골 같은 큰 산이 있고, 시원한 경치도 으뜸이다. 봄이 일찍 찾아온 남해안 섬에서 동백꽃·노루귀와 눈 맞추고 윤슬 가득한 봄 바다를 가득 품었다.

욕지도 옆 걷기 좋은 섬
통영항 여객선터미널을 출발한 바다누리호는 두미도, 노대도 등을 들른다.
통영의 아침은 서호시장이 연다. 할머니들의 푸성귀 좌판이 펼쳐지고, 왁자지껄한 어판장이 활기차다. 단골집인 ‘마산식당’에서는 아침부터 뱃사람들이 반주를 즐기고 있다. 한 아저씨가 호기롭게 외쳤다.
“아지매, 회 좀 떠 오이소!”

주인 아주머니가 도다리 회를 가져와 내 밥상에도 몇 점 내밀었다. 그렇지 않아도 도다리 회가 먹고 싶던 참이었다. 한 점 입에 넣으니 씹기도 전에 스르륵 녹아 사라졌다. 도다리가 맛이 들었다는 건, 바다에 봄이 왔다는 뜻이다. 어수선한 틈에서 야무지게 백반을 챙겨 먹고, 충무김밥을 포장해서 카페리에 올랐다.

두미도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띈다. 욕지도, 사량도, 연대도 같은 섬보다 훨씬 잘 보인다. 섬 중앙에 높은 산이 뾰족 솟아서다. 두미도에는 통영의 수호신인 미륵산(458m)보다 높은 천황산(470.5m)이 우뚝하다. 섬이 하나의 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이 높은 덕분에 맑은 물이 풍부하다. 면적은 5.03㎢로 서울 여의도(2.9㎢)의 1.7배쯤 된다.
두미도 남구 주민들이 운영하는 굴밭기미리조트. 식사도 가능한 오션뷰 숙소다.
두미도의 해안 중에서 절경으로 꼽히는 동뫼섬.
섬 이름은 생김새에서 왔다. 머리와 꼬리만 있는 올챙이처럼 생겨 두미(頭尾)라고 불렀다. 지도를 보니 생김새가 영락없이 올챙이다. 꼬리 부분이 두미도의 절경으로 꼽히는 동뫼섬이다. “연화(蓮花) 세계의 두미(頭尾)를 욕지(欲知)코자 하거든 세존(世尊)에게 여쭤라”는 불경 구절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연화도, 욕지도 같은 주변 섬 이름도 같은 유래라고 주장한다.

통영항을 떠난 배가 두미도 북구를 거쳐 남구에 닿았다. 작은 어촌인 남구에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굴밭기미리조트’가 자리한다. ‘굴밭기미’는 남구의 옛 이름으로, 앞바다가 온통 굴 밭이었다고 한다.

2월의 진달래꽃
남구의 숲길에서 만난 동백꽃. 겨울 추위를 이기고 붉은 등처럼 환한 꽃을 피웠다.
‘두미 옛길’을 걷기 시작했다. 9.4㎞ 길을 따르면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오솔길로 접어드니 동백나무가 가득했다. 툭툭 길에 떨어진 동백꽃 몇 송이가 반가웠다. 무슨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손바닥에 놓고 보다가 킁킁 향기를 맡아봤다. 솔솔 봄 향기가 났다.

천황산 가는 산길로 들어섰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한동안 이어졌다. 중간중간 나타나는 바위 지대에서 바다 조망을 즐길 수 있어 지루하지 않다. 시선을 잡아끄는 풍경은 올챙이 꼬리에 해당하는 동뫼섬이다. 하나의 바위처럼 보이지만,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다. 길을 걸으며 슬쩍슬쩍 훔쳐보다가 아예 전망 좋은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동뫼섬 뒤편으로 노대도 쪽 바다가 윤슬로 반짝였다. 왠지 윤슬은 봄의 정령들의 날갯짓 같다. 봄볕 부서지는 윤슬을 보며 동화 같은 상상을 하니, 근심 걱정이 바람결에 흩어진다.
천황산 전망 바위에 앉아 하염없이 봄 바다를 바라봤다. 오른쪽 큰 섬이 욕지도다.
2시간쯤 발품을 팔아 도착한 천황산 꼭대기에는 진달래 군락이 있었다. 성급한 꽃봉오리 몇 개가 지친 나그네를 반겼다. 3월 말이면 진달래와 산벚꽃이 신록과 어우러져 두미도 최고의 절경을 선사한다. 건너편에 보이는 제법 큰 섬이 욕지도다. 왼쪽으로 상노대도와 하노대도가 자리하고, 멀찍이 제법 높은 산을 품은 연화도도 모습을 어른거린다.

47년 한결같이 배를 탄 선원
투구봉 가는 능선에서 만난 분홍 노루귀.
천황산에서 내려와 투구봉으로 이어진 능선을 밟는다. 볕이 따스해서 외투를 벗었다. 혹시나 하고 길섶을 살펴봤으나, 야생화는 안 보였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길을 서두는데, 뭔가 눈에 밟혔다. 허리를 숙이고 길섶을 헤치니, 노루귀가 잔털 가득한 줄기를 쫑긋 세웠다.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번 눈에 들어오자 노루귀가 줄줄이 보인다. 흰 노루귀에 이어 자태 고운 분홍색 노루귀도 여럿 보인다. 봄이 여기 숨어 있었구나.

투구봉에서 내려오면 다시 두미 옛길을 따른다. 동백꽃이 제법 많이 떨어져 있다. 숲길에서 벗어나면 두미도에서 가장 큰 북구 마을이 나온다. 60여 가구가 사는 마을이라는데, 인적이 뜸하다. 아직 배 시간이 넉넉하다. 핑계 삼아 마을 구판장에서 막걸리로 ‘하산주’를 한 잔 기울인다. 강원도 깊은 두메산골을 다녀온 듯 온몸이 기분 좋게 뻐근하다.
통영에서 도시락으로 충무김밥 가져가는 걸 추천한다. 바다를 보며 먹는 맛이 일품이다.
배에 올라탔다. 뭔가 서운해 망연자실 섬을 바라보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두미도 좋지예. 벚꽃 필 때 오이소. 참 이쁩니더.”

카페리 기관장이었다. 지금까지 47년째 배를 탔다고 한다. 어떻게 그리 긴 세월을 뱃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그의 고향은 사량도란다. 어릴 적에 여객선을 보면서 배 타는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벚꽃 필 때 다시 두미도를 찾고 싶다.
여행정보
김영옥 기자
통영항 여객선터미널에서 한솔해운의 ‘바다누리호’가 하루 두 차례 두미도로 간다. 오전 6시 51분, 오후 2시 출발하며 두미도까지 1시간 30분쯤 걸린다. 두미도에는 버스나 택시가 없다. 그냥 걷는 수밖에 없다. 남구~전망대~천황산~투구봉~북구 코스를 추천하며, 거리는 약 10㎞다. 넉넉하게 5시간쯤 걸린다. 숙소는 남구의 굴밭기미리조트, 북구의 두미연수원이 좋다.
진우석 여행작가 [email protected]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 학창시절 지리산 종주하고 산에 빠졌다. 등산잡지 기자를 거쳐 여행작가로 25년쯤 살며 지구 반 바퀴쯤(2만㎞)을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캠프 사이트에서 자는 게 꿈이다. 『대한민국 트레킹 가이드』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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