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육십간지로 마흔세 번째 해인 병오년(丙午年)이다. 불(火)의 기운을 상징하는 병(丙)과 말띠 오(午)가 만나 ‘붉은 말(赤馬)의 해’라고 한다.
예로부터 말은 강인한 육체와 활기 넘치는 힘의 화신으로서 희망과 밝은 미래를 상징해 왔다. 오전 6시에 모두 일어나 말에게 사료를 주고, 다시 오후 9시에 먹이를 주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끝내는 국내 유일의 말 산업 관련 고교를 지난 12일 찾았다.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에 있는 한국경마축산고는 약 해발 460m의 고원지대에 있다. ‘말의 해’에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인지 방학 중에 나온 학생들의 표정이 밝았다. 집이 경기 화성인 2학년 양세빈(17)양은 “집에 돌아간 뒤에도 계속 키우던 말 생각이 난다”며 “방학이지만 일주일 동안 번갈아 학교에 머물면서 마방에 짚을 갈아주고 목욕도 시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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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말띠 해에 마이스터고로 탈바꿈
1969년 운봉축산고로 출발한 이 학교는 12년 전인 2014년 갑오년(甲午年) 말띠 해에 마이스터고로 지정됐다. 학비와 기숙사비가 모두 지원되는데, 전국에서 지원하는 학생이 많아 매년 경쟁률이 약 1.5대 1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학기 중 단체로 일본·호주·독일·스위스 등에 있는 유명 승마장이나 경마장에 견학 가고, 졸업 뒤에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도 있다.
황관진 교장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면 골프를 치고, 3만 달러면 승마를 즐긴다고 하지 않나”며 “말 산업과 아무 연관이 없었던 학생들이 혼자 인터넷으로 말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우리 학교에 지원한다”고 전했다.
제주에서 온 1학년 김도열(16)군은 “학교에 입학한 뒤 처음으로 말에 먹이 주는 일부터 운동과 목욕을 시키면서 교감하는 법을 배웠다”며 “말이 무심하게 고개로 나를 툭 치면 ‘나를 믿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온다”고 말했다. 강원 속초에서 온 2학년 이규리(17)양은 “개나 고양이도 소중한 반려동물이지만 말은 한층 우아한 매력이 있다”고 했다.
1년 정도 지나고나면 학생들은 말이 내는 작은 소리나 미세한 행동만으로도 컨디션을 가늠할 정도로 친숙해진다. 충분하게 교감하지 못한 말은 자동차의 경적과 같은 외부 충격에 쉽게 반응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황 교장은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인간과 동물이 호흡을 맞추는 종목이 승마”라며 “자연 상태인 말을 훈련 시켜서 그 의사에 반해 통제하고 방향을 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내와 신뢰의 상징인 말의 특성을 학생들이 깨달으면서 집중력과 책임감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한 학년에 30여명 정도 규모인데 2학년 때부터는 승마와 경마 두 갈래로 나뉘어 교육을 받는다. 경주 경기에 직접 말을 모는 기수, 말굽을 교체하는 장제(裝蹄) 교육을 받는다. 말 목장을 관리할 수 있는 경영학 과목도 배운다. 남학생들은 군 복무 때 특기 분야에 근무할 수 있는 혜택도 받는다. 5년 전만 해도 남학생이 70% 정도였으나, 요즘은 여학생이 절반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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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취업 위해 방과 후 일어·독어 공부도
해외 취업문을 뚫기 위해 방과후엔 일본어와 독일어 같은 제2 외국어를 공부한다. 경북 안동 출신인 2학년 박소희(17)양은 “지역에서 주최하는 승마 대회에 출전해 성적을 내면서 소질을 깨닫게 됐다”며 “말 조련사 자격증을 딴 뒤에 승마 지도사가 돼 세계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승마 인구(2024년 59만명)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지역별로 말 보유 사업체수(2024년)는 경기(242개)가 가장 많고, 경북(208개)·전북(179개) 등 순으로 많았다. 장명희 한성대 교학부총장(한국직업교육학회장)은 “인공지능(AI)에 의한 직무 자동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일수록 생명과 교감하고 현장의 미세한 변화를 읽어내는 기술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며 “말 산업 선진국인 일본이나 유럽 시장을 겨냥한 학생들의 도전은 한국의 직업 교육 수준을 올리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