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검찰총장의 눈과 귀’로 불리던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자리가 공석으로 남게 됐다. 범정기획관은 각종 범죄 첩보와 인물 동향 등을 수집해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는 자리다. 인지수사에 착수할 단서를 발굴하는 자리인 만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축소와 확대를 반복하며 ‘검찰개혁’ 논의의 중심에 섰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발표된 검찰 중간간부(고검검사급 검사) 인사에서 범정기획관 후임 발령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 들어 첫인사에서범정기획관으로 전보된 이춘(사법연수원 33기) 범정기획관은 이번 인사에서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으로 발령받았다. 현직 차장검사는 “향후 시행될 ‘검찰개혁’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인사로 보인다. 인지수사의 싹을 자르겠다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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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출범, 에이스들이 모이는 요직
끝내 공석으로 남은 범정기획관 자리를 제일 처음 만든 건 김대중 정부다. 초대 범정기획관은 서영제(사법연수원 6기)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역임했다. 직제상으론 대검 차장 직속이었지만, 사실상 검찰총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자리였다. 차장검사급인 범죄정보기획관 아래론 범정1담당관실과 범정2담당관실이 자리했다. 대외적으론 1담당관실이 부정부패 정보 등을, 2담당관실이 공안 정보 등을 수집한다고 했으나, 실제론 1·2담당관실이 각각 범죄 정보와 동향 정보를 모으는 식으로 운영됐다.
검찰총장의 권한을 상징하는 ‘범정’은 에이스들이 모이는 핵심 요직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역임한 우병우 전 수석도 범정기획관 출신이었을 정도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범정기획관실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핫라인’으로 활용됐다. 다만 권력이 집중된 만큼 정치권 동향 정보 등을 수집하는 2담당관실을 중심으로 사찰 논란, 하명수사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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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서 개혁의 도마로
잘 나가던 ‘범정’이 본격적인 개혁의 도마에 오른 건 문재인 정부에서다. 문재인 정부 첫 검찰총장인 문무일(사법연수원 18기) 총장은 취임 직후 ‘검찰총장의 오른팔’, 범정기획관실에 칼을 빼 들었다. 문 전 총장은 범정을 수사정보정책관으로 개편하고 동향정보수집 기능을 없앴다. 문 전 총장은 수사정보2담당관이 정보를 수집하면, 수사정보1담당관이 이를 검증하도록 세부 기능도 손봤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차장검사급이 지휘하던 수사정보정책관실을 수사정보담당관실로 격하했고, 인원도 절반가량으로 줄였다. 후임 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은 수사정보담당관실의 명칭을 정보관리담당관실로 바꾸고 정보 수집 권한도 6대 범죄로 축소했다. 추 전 장관과 박 전 장관은 임기 내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검언유착’, ‘고발사주’ 의혹으로 갈등을 빚었다. 이에 과감한 범정 손질이 결국엔 ‘윤석열 힘 빼기’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특히 2021년 터진 ‘고발사주’ 의혹은 범정 폐지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수사정보담당관이던 손준성 검사가 총선을 앞두고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국회의원 후보에게 여권 정치인에 대한 고발장을 전달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였다. 범정은 윤 전 총장 징계의 주요근거가 된 ‘판사사찰 문건’ 논란으로도 도마에 올랐다. 해당 문건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등을 심리하는 재판부에 관한 정보가 담겼는데, 문건을 작성한 게 당시 수사정보2담당관이었던 성상욱 검사였다. 성 검사의 직속 상관이 손 검사로, 대표적인 ‘윤석열 사단’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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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서 ‘범정 부활’ 드라이브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들과 사사건건 부딪치던 윤 전 총장은 정권을 잡자 범정 부활을 추진했다. 정보관리담당관을 범죄정보기획관으로 확대 개편했다. 또 범정1담당관과 범정2담당관의 업무 범위에 ‘그 밖에 중요 범죄정보와 자료의 수집 및 관리’를 포함시켜 광범위한 정보수집을 가능하게 했다. 윤 전 대통령 본인이 검사 시절 범정2담당관을 거친 점도 범정 부활에 영향을 끼쳤다. 윤 전 대통령이 범정2담당관을 역임하던 당시 그의 직속 상관이 우 전 민정수석이었다.
축소와 부활을 오가던 범정은 공석으로 30여년 역사를 마치게 됐다. 검찰 관계자는 “역대 범정을 거친 사람 중 감옥에 간 사람이 적지 않다”며 “지금은 과거처럼 인지수사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