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로 첫 흑인 대통령에도 도전했던 제시 잭슨 목사가 17일(현지시간)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2017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10년째 투병해 왔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유족은 이날 성명을 통해 고인의 부고를 알리며 “아버지는 가족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 목소리 없는 이들을 섬기는 지도자였다”고 전했다.
1941년 10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의 흑인 빈민가에서 태어난 잭슨 목사는 미 흑인과 소외 계층의 권익 향상에 앞장서 왔다. 고인은 대학 재학 당시 백인 전용 공공도서관에 들어가려다 체포되는 등의 일을 겪으며 인종 차별에 절망하다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영향을 받아 민권운동가로 성장했다. 1968년 킹 목사가 테네시주 멤피스 한 호텔에서 암살당했을 때 킹 목사 바로 옆에 있던 사람도 잭슨 목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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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목사 영향받아 민권운동
킹 목사를 비롯한 당시 주요 흑인 민권운동가들이 사회주의를 옹호했던 것과는 달리, 잭슨 목사는 사회주의와 폭력투쟁에는 선을 긋고 민주당 등 제도권 정당을 통한 문제 해결을 추구했다.
잭슨 목사는 시카고에 기반을 두고 지역 민권운동을 하다 1971년 흑인 민권단체 ‘오퍼레이션 푸시’를 창설했고, 1984년에 여성과 성소수자 권익까지 아우르는 민권단체 ‘전미 무지개 연합’을 설립했다. 두 단체는 1996년 ‘레인보우 푸시 연합(RPC)’으로 병합돼 미국의 소외계층 전반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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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1988 민주당 대선 경선 출마
잭슨 목사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 사회가 강하게 보수화하고 특히 흑인 거주지 게토(특종 민족이나 인종의 집단 거주지역)화 문제가 불거지자 흑인 민권운동에 강력한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1984년과 1988년 민주당 대선 후보 예비선거에 출마했다. 그 전까지는 한 번도 공식 선거에 출마한 적이 없었던 잭슨 목사는 흑인 유권자 비율이 높은 뉴욕과 남부 일대에서 유의미한 표를 얻으며 선전했으나 대선 본선 무대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08년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까지 잭슨 목사가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1988년 민주당 경선에서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에 패한 잭슨 목사는 당시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듀카키스의 선조는 이민선을 타고, 나의 선조는 노예선을 타고 미국에 왔다. 우리 앞 세대가 무슨 배를 타고 왔든 그와 나는 지금 한배에 함께 타고 있다”며 듀카키스 지지 연설을 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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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만나 지지 표한 인연도
잭슨 목사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6년 한국을 방문한 잭슨 목사는 가택연금 상태였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다. 잭슨 목사는 김 전 대통령을 세계적 인권운동가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 빗대어 ‘한국의 넬슨 만델라’로 부르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2018년 두 번째 방한에서는 한국 정치권과 종교계 인사들을 두루 접촉하며 한반도 평화 메시지를 냈다.
잭슨 목사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장문의 글을 띄워 애도를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잭슨 목사와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올리며 “개성이 넘치고 강인하며 세상 물정에 밝은 훌륭한 사람이었다. 이전에 보기 드물었던 ‘시대의 거인(force of nature)’이었다”고 고인을 기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그를 잘 알고 있었다”며 “극좌 악당과 미치광이들, 민주당이 나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했지만 나는 항상 제시를 돕는 게 기뻤다. (뉴욕의) 월스트리트 40번지 트럼프빌딩에 수년간 그와 그의 (단체) 레인보우 연합을 위한 사무 공간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를 유인원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담긴 동영상을 올렸다가 인종차별주의 논란에 휩싸이자 해당 영상을 삭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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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등 전직 대통령들도 추모 동참
민주당 전직 대통령들도 추모 메시지를 잇따라 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올린 성명을 통해 “신의 사람이자 국민의 사람, 단호하고 끈질긴, 미국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었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셸(부인)과 나는 진정한 거인, 잭슨 목사의 별세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며 “그는 두 차례에 걸쳐 역사적 대선에 출마하며 내가 이 나라 최고위 직책에 도전하는 캠페인의 토대를 깔았다”고 평가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는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잭슨 목사는 인간 존엄성을 옹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기회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더 나은 미국과 더 밝은 미래를 위한 일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은 X(옛 트위터)에 자신이 법대생일 당시 차에 ‘제시 잭슨을 대통령으로(Jesse Jackson for President)’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는 일화를 전하며 “잭슨 목사는 저와 다른 많은 이들에게 이타적 지도자이자 멘토, 그리고 친구였다”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