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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지갑' 근로소득세 지난해 70조 육박 또 최대, 멈춰있는 과표에 '소리없는 증세'

중앙일보

2026.02.18 00:43 2026.02.18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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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직장인들이 출근길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지난해 직장인이 납부한 근로소득세가 70조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체 국세에서 근로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10년 사이 12%에서 18%로 크게 늘었다. 세금을 매길 때 기준이 되는 과세표준 구간이 18년째 사실상 제자리였던 탓으로, 사실상 ‘소리 없는 증세’란 지적이 나온다.
김경진 기자
18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지난해 근로소득세 수입은 68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61조원)보다 12.1%(7조4000억원) 늘어 70조원에 근접했다. 2015년 27조1000억원 수준이었던 근로소득세 수입은 2024년 처음 60조원대에 진입한 데 이어 지난해 다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올해는 대기업 성과급 증가 등의 영향으로 70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근로소득세는 전체 세수 흐름과 비교해도 증가 속도가 두드러진다. 최근 10년(2015∼2025년)간 총국세 수입이 71.6% 늘어나는 동안 근로소득세 수입은 152.4% 증가했다. 평균 세수 증가율의 2배를 훌쩍 넘었다.

전체 세수에서 근로소득세 비중도 빠르게 커졌다. 근로소득세가 총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15년 12.4%에서 2025년 18.3%로 확대됐다. 지난해 기준 법인세(84조6000억원·22.6%)와 부가가치세(79조2000억원·21.2%)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법인세 비중은 2015년 20.7%에서 2025년 22.6%로 큰 변화가 없었고, 부가가치세 비중은 24.9%에서 21.2%로 줄었다. 법인세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부가가치세 비중이 줄어든 사이 근로소득세 비중은 빠르게 커진 것이다.

이처럼 근로소득세 수입이 늘어난 배경에는 취업자 수 증가와 명목임금의 지속적인 상승이 있다. 여기에 더해 장기간 고정돼 있는 과표가 ‘소리 없는 증세’를 유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4월 발간한 ‘최근 근로소득세 증가 요인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중상위 소득 근로자가 실효세율이 더 높은 상위 과표 구간으로 이동한 점 등이 근로소득세 세수 증가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물가만큼 임금이 오르더라도 과표가 제때 조정되지 않으면 실질임금이 정체돼도 납세자가 더 높은 세율 구간으로 이동해 이전보다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재정견인(財政牽引·fiscal drag)’으로 설명한다. 물가 상승이 납세자를 상위 세율 구간으로 ‘끌어올려’ 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세수를 늘릴 수 있다는 의미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향후 물가상승률과 실질소득 증가율, 세 부담이 근로의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과세 구조의 형평성과 부담 수준을 점검함으로써 세 부담의 형평성과 수용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근로소득세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근로소득세 과표는 2023년 하위 구간만 일부 조정됐을 뿐, 나머지 구간은 2008년 이후 사실상 그대로다.

이재명 대통령도 당 대표 시절인 지난해 2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물가 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제자리인데도 누진세 구조 탓에 세 부담이 계속 늘어난다”며 근로소득세 감세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당시 국회의원이던 임광현 국세청장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물가연동 소득세’다. 임 청장은 관련 토론회를 주최하고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 가처분소득을 지키고 근로소득세 과세를 보다 합리화하려면 물가연동제 추진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관련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물가연동제는 공제 등 제도 전반의 개편 작업을 함께 해야 하는 큰 중장기 과제”라며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정부 내에서도 소득세 개편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재경부 내 조세개혁추진단의 논의 역시 상속세와 보유세 개편만 진행 중이다.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들 역시 지난해 조세소위에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로서는 추진 난도가 높은 과제라는 설명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세수 감소다. 물가 상승을 반영해 과표 구간을 조정하면 최소 10조원 이상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제도의 ‘역진성’ 우려도 있다. 물가연동제를 도입할 경우 고소득층에서 세 부담이 더 크게 완화되며 결과적으로 세수 감소가 고소득자 중심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10년 넘게 제자리인 근로소득세 과표에 대한 직장인들의 조세 저항이 커진 만큼 이제는 논의 테이블에 올려 구체적인 검토를 시작해야 한다”며 “연동 주기와 공제제도와의 정합성 등 설계가 복잡한 사안인 만큼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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