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 보트 쥔 충청권의 정중동(靜中動) 민심 과학수도 대전, 행정수도 세종의 ‘혁신 표심’ 향방이 핵심 변수 충남 출신 정청래·장동혁 ‘황산벌 대전’ 대선판도 풍향계 작용
대한민국 선거 지형에서 충청권은 언제나 ‘움직이는 과녁’이자 승패의 마침표였다. 영남의 견고한 보수세와 호남의 강력한 진보세 사이에서 중원의 선택은 곧 청와대 주인을 결정짓는 결정적 열쇠가 되어왔다. 이재명 정부 2년 차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의 시계추는 정권 중간평가는 물론, 향후 정치구도를 가늠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이 충청권 광역단체장(대전·충남·충북·세종)을 독식하며 보수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불과 2년 뒤인 2024년 총선에서 충청의 민심은 28석 중 21석을 민주당에 몰아주며 충청 특유의 ‘냉정한 균형감각’을 보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충청의 선택이 누구를 향할지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특히 정초부터 정치권을 강타한 ‘충남·대전 행정통합’ 이슈와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5000억원의 R&D 예산 복원은 중원 민심을 흔드는 거대한 변수로 부상했다. 여기에 충남 금산 출신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충남 보령 출신의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각 당의 사령탑으로서 고향의 명운을 걸고 ‘황산벌 대전’을 예고하면서, 이번 선거가 단순한 지역 선거가 아닌 ‘대권 전초전’으로 격상된 분위기다.
충청권은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자의 득표율과 가장 근접한 수치를 보여주며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왔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 대선 당시 대전과 충남에서 전국 평균(49.42%)과 1~2%차 득표율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제 다시 한번 그 준엄한 심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중원의 민심이 어디로 향하느냐가 미래 정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내러티브를 갖췄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 긴장감은 금강 줄기를 따라 충청권 전역에 감돌고 있다.
중원 민심 강타한 행정통합의 거대물결
2026년 충청권 선거판을 뒤흔드는 가장 강력한 태풍의 눈은 단연 ‘대전·충남 행정통합’이다. 지난 1월 30일, 더불어민주당이 ‘충남대전통합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며 본격적인 속도전에 불을 지폈다. 1989년 대전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며 충청남도에서 분리된 지 37년 만의 재결합 시도다. 이는 단순히 행정 구역을 물리적으로 합치는 차원을 넘어, 인구 360만 명, GRDP(지역내총생산) 160조원 규모의 초광역 경제권인 ‘대전충남특별시(가칭)’를 구축해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서겠다는 균형발전 구상의 마지막 퍼즐이자 이 대통령이 그린 5극3특 정책의 주춧돌이다.
이번 특별법에는 257개에 달하는 파격적인 자치권과 재정 특례 조항이 담겼다. 핵심은 국세의 지방 이양이다. 양도소득세 전액과 법인세 50%를 통합 지방정부가 직접 교부받고, 부가가치세 중 지방소비세를 제외한 금액의 5%를 이양받는다는 파격적인 제안이 포함됐다. 또 충남 지역의 숙원인 국립공주의대 건립 특례를 통해 지역 공공의료 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청사진도 담겼다. 여당인 민주당은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 시장을 선출하고 7월에 출범시키겠다”는 이른바 속도전을 강조하며 주도권을 노리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중앙정부와의 실질적인 예산 협의가 빠진 통합은 옥상옥에 불과하다”며 속도조절론을 펼치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최근 대전시청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주민들의 직접적인 의사가 배제된 ‘위로부터의 통합’은 화학적 결합을 끌어낼 수 없다”고 경고하며 주민투표 실시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실제로 ‘대전충남 통합 반대 시민연대’ 등 지역 시민단체들은 “시·도민의 정체성을 묻는 중대 사안을 주민투표 없이 추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라며 강력한 저지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통합 청사 위치를 두고도 대전 원도심의 ‘상징성’과 충남 내포신도시의 ‘균형발전론’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천안과 아산 등 충남 북부권 지자체들은 통합이 이뤄질 경우 자신들의 세수가 대전 원도심 재생에 집중될 것을 우려하며 실익 계산에 분주하다. 유권자들은 행정통합이라는 거대 담론이 집값과 일자리, 그리고 자녀 교육 환경에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올지 냉정하게 따져 묻고 있다. 후보들이 제시할 ‘통합 이후 100년 설계’가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를 첫 번째 관문이 될 것으로 보는 이유다.
대전시 유성구를 중심으로 한 과학도시 민심은 이번 선거의 또 다른 핵심 쟁점이다.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4년 국가 R&D 예산은 26조5000억원으로 대폭 삭감돼 과학계는 물론 과학도시를 표방하는 대전 민심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2026년도 예산에선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5000억원 편성됐다. 이재명 정부는 이를 ‘무너진 연구 생태계의 완전 복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지난 30년간 연구 현장을 옥죄었던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폐지하고 연구원 자율운영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등의 ‘체질 개선’ 카드는 대덕특구 연구원들 사이에서 상당한 정책적 호응을 얻고 있다.
과학 도시 자존심 회복, 민심의 둘째 변수
그러나 현장의 온도는 여전히 복합적이다. 예산 수치는 역대 최대로 회복됐지만, 지난 R&D 예산 삭감 파동 당시 과학계를 ‘카르텔’로 낙인 찍었던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그로 인해 해외로 떠난 젊은 인재들의 공백이 여전하다. 대덕연구단지의 한 중견 연구원은 “정권의 성향에 따라 과학 정책이 고무줄처럼 춤을 추는 불안정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며 “단순한 예산 복원을 넘어 연구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헌법적 가치 수준으로 보장받길 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이번 선거가 단순히 ‘얼마를 지원하느냐’의 경제적 문제를 넘어, ‘과학 기술인을 국가의 진정한 동반자로 예우하느냐’에 대한 명분 전쟁임을 시사한다.
민주당은 “기술주도 성장을 위한 8조5000억원 규모의 초격차 전략기술 투자를 통해 대전을 세계 5대 경제과학수도로 만들겠다”며 대전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정부의 예산 증액은 선거용 임기응변일 뿐, AI 시대에 걸맞은 연구 환경의 질적 혁신과 처우 개선은 여전히 답보 상태”라고 날을 세우고 있다.
특히 대전 유성구와 서구 등 젊은 연구 인력이 밀집한 지역의 투표 향방은 인근 세종시 선거와도 연동된다. 최근 정부대전청사에서 정부세종청사, 조치원, 오송을 거쳐 청주공항을 잇는 충청권 광역급행철도(CTX)가 KDI 민자 적격성 조사를 통과하며 ‘30분 생활권’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028년에 착공해 2034년 준공을 목표로 하는 CTX는 최대 시속 180㎞의 고속열차를 투입해 충청권 메가시티의 혈맥 역할을 할 전망이다.
‘과학의 대전’과 ‘행정의 세종’이 하나의 초광역 정책 생활권으로 묶이면서, 이들의 전략적 투표가 중원 전체의 ‘혁신 표심’을 대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과학 민심의 향배가 대전의 정치 지형을 바꾸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을 누가 더 진정성 있게 고민하느냐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역학 관계는 이번 선거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격전지로 만들고 있다. 이번 선거는 사실상 ‘정청래 vs 장동혁’이라는 충청 출신 여야 사령탑의 대리전이자 고향에서의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 대결이다. 충남 금산 출신인 정청래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중원을 평정함으로써 정권 안정론의 교두보를 마련하고 차기 대권 가도의 승기를 잡으려는 심산이다. 반면 장동혁 대표는 보령 출신으로, 보수 재건의 강력한 리더십을 증명하고 ‘강한 충청’의 정체성을 수호하겠다는 각오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2026년판 황산벌 대전’이라 부르며 그 결과가 차기 대선 판도를 가를 풍향계가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충북 지역 상황도 심상치 않다. 김영환 지사가 ‘한·가·온·길’이라는 혁신 화두를 던지며 민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최근 도정 수행 긍정 평가가 하락하며 야권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출생아 증가율 전국 1위라는 성과를 내세워 ‘저출생 극복의 성지’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문화 인프라 확충과 일자리 질 개선을 요구하는 청주권의 젊은 유권자들 시선은 냉랭하다. 충북 북부권인 충주와 제천 역시 ‘중부권 개발론’에 대한 갈증이 여전하다.
합리적 실리주의와 정치적 자존심
세종시는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의 속도감과 대통령 제2집무실의 실질적 운영 방안을 두고 여야가 치열한 적통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종의 유권자들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평균 연령(38.2세)을 자랑하는 만큼, 주거 안정과 보육 환경 그리고 교육 자치와 같은 삶의 질에 직결된 이슈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들은 특정 정당에 대한 맹목적 지지 성향을 보이지 않는다. 삶의 디테일을 바꿀 수 있는 ‘실무형 리더’가 누구인가를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짙다.
결론적으로, 2026년 충청권의 민심은 ‘합리적 실리주의’와 ‘정치적 자존심’ 사이에서 정중동(靜中動)을 유지하고 있다. 충청 유권자들은 지방선거 3대 기준은 행정통합이 가져올 경제적 실익과 R&D 예산 복원이 가져올 미래 비전, 그리고 중앙 정치권에서 충청의 목소리를 대변할 리더십이 누구인지를 꼼꼼히 따지고 있다. 충청의 민심이 여야의 정쟁에 머물지 않고 지역의 자생적 생존 전략인 ‘행정통합’과 ‘과학기술 주권’, ‘행정수도 완성’이라는 본질적 가치에 더 근접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원을 잡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오래된 격언은 2026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중원의 선택은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전략적인 방향을 가리켜왔다. 금강 줄기를 따라 흐르는 민심의 도도한 물결은 6월 3일이 다가올수록 점점 거세질 전망이다. 6월 3일 개표함이 열리는 순간 확인될 충청의 선택이 곧 대한민국의 새로운 백 년 설계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