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라노 시내의 분위기는 놀라울 만큼 차분하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한창이지만, 뜨거운 열기는 경기장 안뿐이다. 밖으로 나오면 일상은 평소와 다름없다. 하지만 차준환(25)에겐 조금 다르다. 그가 선수촌 문을 나서거나 시내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를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지난 15일 중앙일보와 만난 차준환은 “밀라노 대성당(두오모)이 사진보다 훨씬 웅장해 좋았고, 관광객들이 알아봐 주셔서 신기했다”고 전했다. 이번 대회 기간 외신들 사이에서 ‘가장 잘생긴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 그는 관중석에 있을 때도 TV 카메라가 수시로 비추는 분명한 ‘셀럽’이다.
그는 밀라노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그의 프리스케이팅 주제곡 ‘미치광이를 위한 발라드’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가수 고(故) 밀바의 곡이다. 밀바의 딸 코르냐티 마르티나는 밀라노 코리아하우스를 직접 찾아 차준환에게 영상 편지를 남겼다. 마르티나는 “그대의 연기는 우아했고, 넘어진 뒤 다시 일어나 연기하는 모습은 숭고했다”며 “음악과 교감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하늘에 계신 엄마도 준환 선수의 연기를 보고 기뻐하셨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하지만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성적이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에선 더욱 그렇다. 차준환의 세 번째 올림픽 도전은 최종 점수 273.92점으로 마무리됐다. 3위 사토 슌(일본)과는 불과 0.98점 차인 4위였다. 차준환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내 모든 걸 쏟아부었기에 스스로 100점을 주고 싶다”며 의연했다.
올림픽 4위는 잔인한 순위다. 메달을 눈앞에서 놓친 상실감은 선수에게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 그러나 차준환은 “3위와 차이가 적어 아쉽긴 하지만 4위도 대단한 성적이라 생각한다”며 “베이징(5위)보다 한 단계 성장한 모습에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두 시즌 동안 차준환은 발에 맞지 않는 스케이트 부츠와 사투를 벌였다. 프리스케이팅 경기 뒤 빙판에 앉아 상념에 젖었던 그는 “절망적이었고 쓰러질 것 같았지만 코치님과 가족들이 나를 잡아줬다”며 4년의 여정을 반추했다.
이번 대회는 ‘점프 괴물’ 일리아 말리닌(미국)의 백플립(뒤 공중제비) 등 파격적인 기술이 화제였다. 차준환은 “관객들이 점프보다 백플립에 더 열광하시더라. 나도 배워야 하나 싶어 웃음이 났다”고 했다. 경기를 마친 차준환은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올림픽을 만끽하고 있다. 쇼트트랙 현장 응원을 다녀온 그는 “피겨와는 다른 박진감에 긴장감이 넘치더라”며 웃었다. 21일 갈라쇼 초청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송소희의 ‘낫 어 드림(Not a Dream)’에 맞춰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어느덧 대표팀의 맏형 라인이 된 그는 최가온(스노보드), 임종언(쇼트트랙) 등 메달을 딴 10대 후배들을 보며 자신의 17살때 평창 무대를 떠올렸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노력했을지 보여 감동적이었다. 나는 그때도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그 시절 꿈을 가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이제 팬들의 관심은 그의 ‘마지막’에 쏠려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회가 그의 ‘라스트 댄스’가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그러나 차준환은 ‘열린 결말’을 선택했다. “세 번째 올림픽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벌써 ‘마지막’이라고 단정 짓는 분들이 있어 조금 서운하기도 해요. 굳이 지금 마지막이라고 선을 긋고 싶지 않습니다. 당장 2030년 대회를 확답하긴 어렵지만, 나중 일은 천천히 생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