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사표를 냈다. 국내 가치투자 1세대로 꼽히던 그의 사임은 주식시장에서 하나의 상징적 장면이었다. 그가 개발 운용하던 가치투자 펀드는 2000년부터 13년간 누적 1400%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2010년대 들어 기술·바이오 중심의 성장주 장세가 이어지면서 부진을 겪었다. 장기적 성장과 안정성에 초점을 두는 가치투자는 그의 퇴진으로 종언을 고하는 듯했다.
이채원 당시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최고경영자(CEO) 얘기다. 이때 강대권 전 유경PSG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와 20년 지기인 남두우 전 다름자산운용 대표, 그리고 ‘가치투자 2세대’ 김민국·최준철 VIP자산운용 공동대표가 찾아왔다. “이대로 은퇴하면 가치투자는 패배하는 것”이라며 후배들이 바짓자락을 잡았다. 그렇게 2021년 6월 ‘라이프자산운용’이 설립됐다.
라이프운용은 일반적인 주주행동주의와 달리 경영진과 대주주에게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고, 이를 수락하는 기업에 투자를 늘리는 ‘주주협력주의’ 방식을 택했다. 출범 직후 내놓은 대표 사모펀드 ‘라이프한국기업ESG향상 1호’는 지금까지 누적 수익률 208.5%를 기록하면서 5년 연속 성장 중이다. 순자산은 5년여 만에 3조4300억원으로 불었다. 다음은 이채원 라이프운용 이사회 의장, 강대권·남두우 공동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Q : 라이프운용의 운용 철학은.
A : “우리는 투자할 때 기업에 ‘거버넌스상 부적절한 부분을 개선할 생각이 있냐’라는 질문을 던진다. 거절하거나 외면하는 기업은 포트폴리오에서 뺀다. 한 단계 진화한 가치투자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라이프운용의 주주협력주의는 기업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전략이나 행동주의와 다르다. 우리는 기업의 동반자로서, 모든 투자자가 만족할 수 있는 투자를 하려고 한다. 라이프운용은 모든 펀드가 다 하나의 포트폴리오, 하나의 전략으로 운용된다. 다른 운용사가 그때그때 시황에 맞춰 여러 개 상품을 내놓는 일종의 백화점이라면, 우리는 똑같은 전략과 포트폴리오로 계속 가는 전문점이다.”
Q : 가치투자라고 하면 수익률이 높지 않을 거란 인식이 있다.
A : “보통 펀드 성과를 평가할 때 수익률과 변동성, 두 가지 지표를 많이 이야기한다. 수익률이 결과라면 변동성은 과정에 대한 지표다. 라이프운용은 변동성 관리에 더 집중한다. 수익률만 본다면 더 좋은 성과를 보이는 하우스도 있지만, 변동성 대비 수익률을 본다면 라이프운용만큼 성과를 낸 하우스는 많지 않다. 라이프운용 펀드는 연간 기준으로 한 번도 ‘마이너스(-)’가 난 적이 없다.”
Q : 코스피 5000 시대다. 지금 시장을 어떻게 보나.
A : “상법 개정과 배당소득 분리과세 시행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 주요 요인이었던 후진 거버넌스와 주주 간 이해관계 불일치 문제가 대부분 해소됐다. 여기에 글로벌 유동성 장세와 반도체 호황이 겹치며 증시 호황을 견인했다. 하지만 주가 수준만 보면 코스피 상장사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0~11배 수준이다. 대만이 20배, 일본이 17~18배다.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는 의미다. 다른 나라와 비슷한 수준을 인정받는다면 지금보다 30~40% 더 오를 여지가 있다. 단 기업 실적이 예상대로 나와야 하고, 정부 정책 의지도 뒷받침돼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마지막 퍼즐은 상속세다. 현재 상속세는 60%라 기업 승계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인데 해법이 필요하다. 자격 없는 2~3세는 승계를 허용해선 안 되지만, 업(業)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준비된 2~3세는 법적·제도적 지원으로 기회를 줘야 한다. 특히 생산적 금융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정부가 지정한 전략 산업에 적극 투자하는 기업에겐 상속세를 이연해 줄 필요가 있다.”
Q : 어떤 자산운용사에 돈을 맡겨야 하나.
A : “운용사가 할 일은 회사의 정체성과 운용 철학, 투자 전략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 가치투자만 의미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모멘텀 투자만 한다’는 것도 멋지지 않나. 하지만 좋은 말만 늘어놓고 딴짓을 하면 안 된다. 원칙과 철학을 지키며 열심히 하는 운용사가 어디인지 찾아보고, 자신이 맡기려는 자금의 성격과 자신의 성향에 따라 투자하는 것이 좋다.”
Q : 투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A :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 어떤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어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밤에 잠이 잘 오는 투자를 해야 한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저서 『증권분석』에서 ‘투자란 철저히 기업을 분석해 원금의 안정성과 적정한 수익성을 확보하는 행위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투기’라고 했다. 지금까지 이보다 더 투자의 본질에 부합하는 정의를 본 적이 없다. 무조건 화려하고 비싼 것보다는 내 몸에 맞고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 투자도 그렇다.”
☞더하우스(The House)=오직 ‘최고의 투자를 해보겠다’는 신념을 밑천 삼아 한국 자본시장의 ‘큰손’으로 성장한 주역을 만나봅니다. 이제껏 제대로 공개된 적이 없는 창업자들의 이야기와 수익 비결을 파헤칩니다. 좋은 시절엔 위기를 가늠하고, 위험할 땐 기회를 포착하는 투자 대가들의 어깨에 올라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