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재판소원제가 도입될 경우 ‘소송 지옥’의 굴레에 빠질 수 있다며 재차 반대 의사를 밝혔다. 22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한 건도 발의되지 않다가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후 재판소원제 추진이 본격화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제도를 가능케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은 지난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전체회의를 통과해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대법원은 18일 Q&A(문답) 형태의 참고자료를 내고 재판소원제가 고비용, 저효율의 ‘희망 고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12일 출근길에 재판소원제 도입에 대해 “그 결과가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가 가는 문제”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참고자료에서 “정치적 사건이나 국민적 논란이 된 사건이 아니라면, 일반 국민에게 재판소원은 사실상 희망 고문에 가깝다”며 “소송의 장기화, 확정된 재판도 취소될 수 있다는 법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거래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판소원제에 대한 충분한 숙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대법원은 “22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법률안이 국회에서 심사된 적이 없다”며 “(재판소원제는) 지난해 5월 1일 공직선거법 위반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에 대한 즉각적 반향으로 발의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자 민주당이 ‘4심제’ 논의를 시작했다고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2021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으나,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자 민주당은 “사법 쿠데타”라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재판소원제 도입을 추진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법원이 유죄로 판결한 사건에 대해 헌법소원으로 뒤집을 수 있는 만큼, 국민의힘에선 “‘이재명 피고인’ 구하기”(조배숙 의원)라는 주장이 나왔다.
대법원은 재판소원제가 우리 헌법 체계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헌법 해석 권한을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나눠 부여했고, 어느 기관의 재판을 다른 기관이 다시 심사하는 것을 예정하지 않았다”며 “대법원과 헌재는 각자 다른 단계에서 헌법의 최종 해석 기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헌재는 태생적으로, 제도적으로 정치적인 재판 기관”이라며 “헌재가 재판소원을 통해 특정 재판의 결론에 직접 관여하면 재판이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헌재는 지난 13일 참고자료를 내고 “헌법은 헌법재판권을 헌재에 귀속시킴으로써 재판소원의 헌법적 근거를 분명히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송 지옥’을 초래할 거란 비판에 관해선 “재판소원 중 전원재판부에 회부되는 사건은 헌재의 판단이 중요한 헌법적 의미를 가지거나 기본권 보장에 필요한 경우에 한정되므로, 분쟁의 종국적 해결 지연을 들어 재판소원 도입에 반대하는 것은 헌법의 최고 규범성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외면하는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은 이달 내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2월 24일 본회의부터 주요 개혁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