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화의 거장 유영국(1916~2002)의 아내이자 현대 금속공예의 선구자 유리지(1945~2013)의 어머니인 김기순 여사가 지난 17일 별세했다. 106세.
고인은 192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故) 이희호 여사가 5촌 조카다. 황해도 사리원고녀를 졸업한 뒤 스물넷에 유영국과 결혼했다. 유영국이 도쿄 문화학원 유화과를 졸업한 뒤였다. 1944년 결혼해 남편의 고향인 경북 울진에 정착했다.
남편은 일본에서도 꽤 이름을 알린 화가라 했지만, 결혼 후 10년간 그림 그리는 모습은 별로 못 봤다. 선주의 아들이던 유영국은 직접 선원들을 부려 배를 몰았고 종종 만선도 했다. 1948년 서울대 미대 교수로 부임했지만 2년 만에 전쟁이 났다. 울진에 내려가 양조장을 하며 소주를 만들어 팔았다. 유영국이 직접 라벨을 디자인한 ‘망향’ 소주는 고향 잃은 이들이 많던 당시 인기를 끌었다. 양조장 사업은 번창했지만 1955년 유영국은 “금(金)논도 싫고, 금산도 싫다. 이제 그림을 그리겠다”며 사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가족과 서울로 올라왔다. 홍익대 교수로도 일했지만 오래 하지 않고 평생 화가로 살았다.
오랜 공백기가 유영국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남들보다 못 그린 시간이 많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유영국은 오전 7시 반에 깨어 8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반에 화실로 건너가 그리다가 11시 40분쯤 나와 손 씻고, 12시 땡 치면 점심이 차려져 있어야 했다. 오후 1시쯤 화실로 돌아가 6시에 저녁 식사하러 나오고, 그 뒤엔 낮에 낭비한 시간만큼 다시 화실에서 벌충했다. 김 씨는 생전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기계처럼 그리던 남편을 구심점으로 내 생활도 맞춰 돌아갔다"고 돌아봤다.
유영국은 1975년, 환갑에야 첫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난생 처음 그림도 팔았다. 그러나 61세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심장 박동기를 달았고, 2002년 86세로 타계할 때까지 8번의 뇌출혈, 37번의 병원 입원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그렸다. 김 여사는 그런 화가의 아내로 살았다. 생계도 김 여사의 몫이었다. 그는 택시를 사서 운영하고, 버스 노선을 사서 간이 운수업을 하기도 했다.
장녀인 고 유리지 교수는 미국 템플대 졸업 후 서울대 미대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한국 현대 금속공예의 초석을 마련했다. 2013년 장녀 유리지 교수도 백혈병으로 별세했다.
유족은 아들 유진ㆍ유건, 딸 유자야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은 20일 오전 9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