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울대학교 설립자이자 대한민국 문해교육과 평생교육, 고등교육 발전에 일생을 헌신한 ‘성암(星岩) 이재식(李在植)’ 이사장이 17일 오전 7시 40분경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가난과 시대의 격랑을 배움으로 극복하며, 교육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미래를 열고자 했던 실천적 교육자였다.
1934년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성암리의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의 혼란을 온몸으로 겪으며 성장했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유년 시절에도 배움에 대한 열망만은 꺼지지 않았다. 맨발로 험한 산길을 넘어 학교에 다니고, 관솔불과 호롱불 아래서 공부했던 경험은 훗날 그의 교육관을 형성한 근간이 되었다. 그는 교육을 “가난과 고통을 이겨내는 가장 큰 힘”으로 확신했다.
번암초등학교 졸업 당시 전교 회장상과 도지사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학업 성취를 보였으나, 가난은 늘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럼에도 그는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 진학의 고비마다 오직 의지와 노력으로 새 길을 열어갔다. 이러한 삶의 체험은 이후 배움에서 소외된 이들을 향한 깊은 연민과 책임의식으로 이어졌다.
고인은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한 뒤 국책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근로 청소년과 만학도를 위한 야학 ‘희망원’을 시작으로 문해교육의 요람인 ‘수도학원’을 설립했다. 검정고시 교육과 평생학습을 통해 수많은 이들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주며, “배움에는 때가 없다”는 신념을 현장에서 실천했다. 그의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인성과 자립, 삶의 회복을 지향했다.
이러한 교육 철학은 고등교육으로 확장됐다. 1994년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남서울대학교’를 설립한 그는, 학생 중심 교육과 실용·산학협력을 강조하며 대학을 중부권을 대표하는 명문 사학으로 성장시켰다. 남서울대학교의 오늘은 ‘교육입국’이라는 그의 평생 신념이 현실로 구현된 결실이다.
광림교회 장로로서 신앙인의 삶을 살았던 고인은 교육을 하나님이 맡긴 소명으로 여기며, 섬김과 책임의 자세로 학교와 사회를 이끌었다. 그는 서울교육상, 한국문해교육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4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그러나 고인은 생전에 훈장보다 다음 세대를 향한 책임을 더 소중히 여겼다.
이재식 이사장의 삶은 한 개인의 성공을 넘어, 교육이 한 시대와 수많은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언이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열린 교육’의 정신과 교육 공동체는 오래도록 살아 숨 쉴 것이다.
남서울대를 세운 성암 이재식 성암학원 이사장이 1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1934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가난과 역경을 배움으로 극복하고 수도학원과 남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오삼교육공동체를 설립해 문해교육과 평생교육 발전에 헌신했다. 유족은 장남 이윤석 남서울대 부총장, 차남 이형석 재미사업가, 딸 이희승 사회복지 시설운영자가 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 17호실, 발인 20일 오전 6시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