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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에서 F1이 보인다

중앙일보

2026.02.19 07:01 2026.02.1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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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트랙 인코스를 파고드는 한국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 에이스 최민정(위). 아스팔트 트랙에서 정교한 코너링으로 자리싸움을 펼치는 포뮬러원 머신(아래)과 닮았다. 쇼트트랙과 포뮬러원 모두 정확한 타이밍과 포지셔닝이 승부를 가르는 스포츠다. 김종호 기자, [AP=연합뉴스]
“위험하고 불공정하며, 운에 의해 승자가 결정된다. 심지어 동료끼리도 걸핏하면 싸운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을 지켜보는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비판이다. 하지만 이런 ‘혼돈’은 쇼트트랙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이 종목을 설명할 때 흔히 ‘얼음 위의 F1’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세계 최고의 자본과 팬덤이 몰리는 자동차 경주 F1(포뮬러 원)은 정확히 같은 이유로 열광적인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결국 쇼트트랙을 향한 비난은 이 종목이 가진 극한의 레이싱 본능과 그 속에서 요동치는 인간적 드라마에 대한 역설적인 찬사일지도 모른다.

상대를 넘어라핵심은 코너링
개인 기록이 중요한 스피드스케이팅(롱트랙)과 달리, 쇼트트랙은 철저한 상대성 게임이다. 111.12m의 좁은 트랙 위에서 치열한 자리싸움을 벌인다. 쇼트트랙의 진정한 매력은 이 혼돈에서 나온다. 정교한 코너링과 막판 추월의 묘미도 여기에 포함된다. F1이 검은 아스팔트 트랙 위를 폭발적으로 달린다면, 쇼트트랙은 흰 빙판 위를 내달리며 0.001초의 승부를 다툰다.

쇼트트랙은 한 바퀴 중 직선과 곡선의 비율이 거의 반반이지만, 곡선 주로 진입과 탈출 각도를 고려하면 선수들은 사실상 경기 내내 곡선을 도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선수들은 호리병 주법 등으로 레이스를 펼친다. F1도 코너링에서 승패가 갈린다. 머신이 코너 안쪽 가장자리인 에이펙스(Apex)를 찍고 나가야 이후 속도를 높여 직선 구간을 지배할 수 있다. 빙판 위 선수들이 왼손으로 빙판을 짚으며 버티는 것은 극한의 원심력을 이겨내기 위해서다. 코너를 잘 버티고 돌아야 그다음 직선에서 힘을 낼 수 있다. F1이 타이어 온도와 노면 상태에 민감하듯, 쇼트트랙 역시 빙질에 따른 블레이드 세팅(날 관리)이 중요하다. 날의 벤딩(휘어진 정도)과 로그(둥근 정도) 작업은 승패의 핵심 변수다.

쇼트트랙은 단순한 속도 싸움이 아니다. 포지셔닝과 타이밍이 가르는 승부다. 특히 선두 주자는 맞바람과 같은 공기 저항을 온몸으로 안고 달린다. 한국을 비롯한 강국들은 앞 선수 등 뒤에 바짝 붙어 체력을 비축하는 기술적 전략을 구사한다. 선두 뒤에 밀착하면 공기 저항을 20~30% 줄일 수 있다. 이 전략은 F1의 슬립스트림(Slipstream·낮은 공기 저항 상태)과 동일하다. 선두가 공기 저항을 이겨내며 속도에 영향을 받게 놔두다가, 승부처에서 폭발적으로 추월하는 식이다. 이는 F1의 DRS(뒷날개를 열어 공기 저항을 줄이는 가속 장치) 버튼을 누른 모습을 연상케 한다. 때론 아웃코스라는 먼 경로를 감수하면서도 과감한 추월을 선보인다.

경기장 들어서면 우리 팀도 경쟁자
쇼트트랙 개인전에서 자국 동료와 함께 뛴다면 경쟁국 에이스를 견제하는 작전을 쓰기도 한다. F1 역시 팀의 우승을 위해 한 선수에게 양보를 지시하는 팀 오더가 존재한다. F1의 같은 팀 드라이버들은 서로의 데이터를 가장 잘 아는, 가장 위험한 경쟁자다. 순위를 양보하라는 팀 오더에 항명하거나 무리한 추월로 동료끼리 충돌하는 팀킬은 F1에서 가장 극적인 드라마다. 쇼트트랙도 F1처럼 치열한 팀 내 경쟁과 희생이 공존하며, 이는 경기를 더욱 긴장감 넘치게 만든다.

때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팀 내 갈등은 F1에서 오히려 인기를 지탱하는 핵심 동력 중 하나다. 동료를 이겨야 내가 존재한다는 이 잔인한 아이러니는 우리 인생과 닮아 있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가면서도 각자의 성취를 위해 충돌하는 인간적인 고뇌, 그 갈등을 뚫고 나오는 결과물은 F1 팬들을 열광시킨다. 이는 쇼트트랙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법이다.

계주·피트스톱에선 협력이 관건
단체 계주에서는 빙판 위 선수 4명이 오차 없는 호흡을 선보여야 한다. 한국에 금메달을 안겨준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경기에서도 심석희(4번)-최민정(1번)으로 이어지는 구간의 호흡이 빛났다. 앞 주자가 다음 주자의 몸을 밀어주며 가속도를 붙이는 푸시가 비결이었다. 힘 있게 엉덩이를 밀어주는 순간, 다음 주자는 그 힘을 가속도로 전환해 폭발적인 레이스를 펼쳤다. F1에서도 이와 같은 정교한 협력이 요구된다. 2~3초 만에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피트스톱이다. F1에는 약 스무 명에 달하는 메카닉(정비팀)의 호흡이 레이스 성패를 좌우한다.





한찬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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