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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26.02.1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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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과 같은 책의 형태는 수천년 역사 중 일부일 뿐이다. 두루마리로 된 『초조본 대보적경』(고려 11세기). 김성룡 기자
연 650만 관람객(지난해 기준)이 찾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상대적으로 인기 없는 유물이 고서(古書)다. 한문과 담쌓은 세대에겐 ‘검은 것은 글씨, 흰 것은 종이’에 불과하다. 이재정 박사(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는 그런 인식이 늘 안타까웠다. “한자를 몰라 관심 없다지만, 어차피 책 내용은 인터넷에 다 있잖아요. 박물관에서 봐야 할 건 책의 물성(物性), 말하자면 수천년에 걸쳐 책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아닐까요. 도자기나 그림만 국보·보물인 건 아닌데….”

이재정
박물관 정년 퇴임을 앞둔 지난 2022년 조선 활자 연구를 담은 『활자본색』을 썼던 그가 4년 만에 『고서의 은밀한 매력』(푸른역사·사진)이라는 신간을 냈다. 『화엄경』 『월인천강지곡』 『조선왕조실록』 등 15종을 사례로 들어 ‘옛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읽혔나’를 들여다봤다. 박물관에서 청춘을 바친 연구자답게 텍스트(내용)보다 유물로서의 책에 초점을 뒀다. “활자를 연구하다보니 그걸로 찍은 책을 분석해야 했죠. 그렇게 들여다본 책이 진화해 온 모습이 놀랍고 신비로워 책까지 쓰게 됐어요(웃음).”

그런 시선으로 상설전시관 3층 기증실에 전시된 『초조본 대보적경 권59』(고려 11세기)를 보면 여간 새롭지 않다. 『성문종합영어』를 쓴 송성문(1931~2011) 선생이 2003년 기증한 이 국보 경전은 여러 장의 한지를 이어 붙인 두루마리 형태다. 같은 진열장엔 조선 세조 때 간행한 『수능엄경언해 권6』(송성문 기증)도 있는데, 약 400년 뒤 나온 이 경전은 오늘날의 책에 가까운 형태다. 다만 당시 종이 질의 한계로 양면이 아닌 한면씩 인쇄하고 가운데를 반으로 접어 착착 쌓은 뒤 이를 묶었다. 실로 묶었다고 해서 선장본(線裝本)이라 부르는 이 방식은 오늘날 전해지는 대부분의 고서에서 볼 수 있다.

“두루마리 형태는 평소엔 둘둘 말아 보관하긴 좋았는데, 중간 대목 읽으려고 감았다 폈다 하면서 손상도 많았겠죠. 그래서 이걸 병풍처럼 차곡차곡 접는 절첩본(折帖本)이 나오고요. 이후에 종이를 착착 쌓아서 만드는 선장본에 와서야 비로소 우리가 아는 책 형태가 되죠. 특히 1438년(세종 20)에 펴낸 『자치통감강목사정전훈의』는 오늘날과 같은 서문도 있고, 범례(일러두기)와 목차도 갖췄어요. 활자도 크고 작은 변화를 줘서 본문과 주석을 구분하고요. 이렇게 보관성·휴대성·가독성을 높인 책의 만듦새가 불과 6~7세기 전 정착됐답니다. 인류 역사에선 두루마리 책이 훨씬 길었어요.”

책(冊)이라는 한자어가 유래한 목간(글씨를 쓴 나뭇조각)으로부터 돌·금속 등의 재료, 권자본(卷子本·두루마리)·절첩본·선장본 등 제본 변화까지 책의 역사를 훑다 보면 가슴 벅찬 순간이 온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처음으로 불경을 한글로 번역한 책을 펴내는 대목이다. 온통 한문 유물뿐이다가 『월인천강지곡』(국보)이 소개될 때, 굵은 돋움체로 된 한글음에 부속물처럼 작은 글씨로 한자가 병기된 모습이 새삼스럽다. 더구나 당시 귀했던 금속활자로 한글을 찍은 것 자체가 당대 문화의 자존감을 일러주는 듯하다.

인천 계양산성 출토 ‘논어’ 목간. [사진 푸른역사]
백제 왕궁리 오층석탑 출토 금강경판(가운데). [사진 푸른역사]
병풍처럼 접을 수 있는 절첩본 『묘법연화경』(14세기 말). [사진 푸른역사]
“좀 과장하면 금속활자란 게 오늘날 반도체 비슷한 기술력이 필요한 건데, 실제로도 세종·세조·성종·정조 등 통치가 안정되고 경제력이 뒷받침된 시대에 집중 생산됐어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 같은 경우도 전란이 없고 왕권이 강했던 시기엔 금속활자로 찍었는데, 목활자에 비할 바 없이 아름다워요. 텍스트만 볼 땐 알 수 없는 사실이죠.”

고서의 시대엔 종이도, 정보도 귀했고 그 때문에 한권 한권이 남달랐다. 직접 필사하거나, 찢어진 부분에 종이를 덧대 보수하고, 비단으로 표지를 하거나 소장자 인장(印匠)을 남기는 등 개별 책을 ‘보물’처럼 다뤘다. 박물관에서 눈여겨볼 것들도 그런 ‘사람의 흔적’이라고 이 박사는 말한다.

“자동차 시대가 됐어도 마차 몰던 시대의 관습이 운전석에 남았듯이, 수천년간 책이 변화하면서도 그 전 시대의 흔적과 숨결이 이어져요. 예컨대 조선 왕조에서 왕비나 왕세자 책봉 때 하사하는 어책(御冊)은 더 이상 쓰지 않는 목간 비슷한 모양인데, 일종의 예물이자 징표로서 의미였거든요. AI(인공지능) 만능인 21세기에 박물관에 오는 이유가 실용 때문은 아니듯, 디지털 시대에도 책의 가치는 이어질 겁니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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