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한 지귀연(52·사법연수원 31기) 부장판사는 법원 마크가 그려진 은색 넥타이에 법복을 입고 약 1시간 동안 판결 요지를 읽었다. 평소와 같이 이마를 덮은 수더분한 머리는 그대로였지만 선고하는 내내 어느 때보다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지 부장판사는 선고 도중 한 차례도 미소를 보이거나 예정에 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물컵에 담긴 물을 마시거나 기침을 하며 준비해 온 A4 용지의 판결 이유 정리 내용을 읽었다. 윤 전 대통령이 앉은 피고인석을 몇 차례 쳐다보기도 했다.
국헌 문란 목적을 인정하면서 그는 잉글랜드왕 찰스 1세(1600~1649)가 군대를 동원해 의회를 해산했다가 반역죄로 처형당한 사례를 언급했다. “국민 주권을 위임받은 의회에 대한 공격은 왕이라 하더라도 국민 주권을 침해한 것으로 되어 반역죄가 성립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은 내란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을 역사적 논거를 들어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재판 후반부에 양형 이유를 설명하면서는 개인적인 소회를 길게 밝히기도 했다.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정은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로 군과 경찰의 신뢰와 대한민국의 대외 신인도가 크게 하락하고, 우리 사회가 양분돼 극한의 대립을 겪은 것”이라고 했다.
또 “수많은 사람이 수사를 받고 법정에 나왔다. 비상계엄을 수행한 군인과 경찰은 사회적 비난과 법적 책임도 져야 한다. 상관 지시의 적법성과 정당성에 대한 군인과 공무원의 신뢰도 훼손됐다.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전까진 부드러운 분위기로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을 모두 경청했지만 판결을 하면서는 엄중한 경고를 내렸다는 풀이가 나온다. 그는 앞선 재판에서 변호인이 항의하면 “불쾌하셨다면 죄송하다. 100% 제 잘못”이라고 사과하거나 국무위원 진술을 정리하면서 “장관님 이름 좀 뽑아놓고 외워야겠다. 이 나라 장관님 이름을 모르니까 미안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었다.
관심을 모았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범위에 대한 판단도 내놨다. 지 부장판사는 지난해 3월 공수처엔 내란죄 수사권이 있는지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를 결정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여권을 중심으로 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그는 “공수처는 직권남용은 수사할 수 있을 뿐 내란죄 수사 권한은 없지만, (내란 혐의를)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직접 관련성 있는 범죄로 보는 게 바람직하다”며 내란죄 수사권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