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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주고, 달렸다…8년 냉기 녹인 대역전극

중앙일보

2026.02.19 07:44 2026.02.1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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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전에서 최민정(왼쪽)을 혼신의 힘을 다해 밀어주는 심석희. 엄청난 탄력을 만들어낸 두 선수의 완벽한 호흡은 금메달을 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종호 기자
심석희(29)의 두 손이 최민정(28)의 몸에 닿는 순간, 빙판을 감돌던 8년의 냉기가 순식간에 흩어졌다. 단단하게 뻗은 심석희의 팔 근육에는 한때의 앙금 대신 동료를 향한 절실한 추진력이 실렸고, 그 힘을 고스란히 받아낸 최민정은 마치 오래된 굴레를 벗어던진 듯 얼음 위를 미끄러져 나갔다. 밀라노의 차가운 링크 위에서 벌어진 이 뜨거운 ‘푸시’는 한국 쇼트트랙이 잃어버렸던 믿음과 경쟁력을 되찾는 상징적인 의식이기도 했다.

19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 최민정·김길리·노도희·심석희가 ‘원팀’으로 뭉친 한국은 4분04초014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8년 만에 세계 정상의 자리를 탈환했다.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이 1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시장식에서 시상대에 올라 기뻐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심석희와 최민정 잔혹극의 시작은 2018년 평창 대회였다. 1000m 결승에서 두 선수가 충돌해 함께 넘어진 사건은 3년 뒤인 2021년, 심석희가 당시 코치와 나눈 사적인 메시지가 폭로되며 고의 충돌 의혹이라는 메가톤급 폭풍으로 변했다.

특히 메시지 속 ‘우승을 막기 위해 내가 최민정과 함께 넘어지겠다’는 표현은 실행 여부와 상관없이 최민정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후 심석희는 자격정지 징계로 2022년 베이징 무대에서 지워졌고, 복귀 후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거대한 빙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계주에서조차 서로 살이 닿는 것을 피하기 위해 순번을 떼어놓아야 했던 불편한 동행은 한국 쇼트트랙의 전력을 갉아먹는 아킬레스건이었다.

얼어붙었던 빙벽을 녹인 건 주장이자 피해자였던 최민정이 먼저 내민 손이었다. 최민정은 지난달 밀라노 현지에서 열린 심석희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 그러면서 한국 여자 계주의 필승 공식인 심석희가 밀고 최민정이 나가는 ‘골든 조합’도 8년 만에 부활했다.

결승전 23바퀴째, 체격 조건이 좋은 심석희가 후방에서 최민정을 힘껏 밀어주는 장면은 이번 경기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심석희의 투혼 어린 푸시를 받은 최민정은 인코스를 날카롭게 베어내며 캐나다를 추월했다. 8년 전 평창에서 서로를 밀어냈던 그 손이, 이제는 서로를 밀어주는 금빛 조합으로 부활한 것이다.

심석희는 “올림픽을 앞두고 힘든 과정이 많았는데, 동료 선수들이 잘 버텨줬다”며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최민정 역시 “서로를 믿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며 화답했다. 그 ‘서로’가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아도 다들 안다.

◆봅슬레이 원윤종, IOC선수위원 당선=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선거에 출마한 봅슬레이 선수 출신 원윤종은 19일 IOC가 공개한 투표 결과 요한나 탈리해름(에스토니아·바이애슬론)과 함께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문대성(태권도), 유승민(탁구)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역대 세 번째이자 동계스포츠 선수 출신으로는 최초다. 임기는 2034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폐막식까지 8년이다.





김효경.박린.고봉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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