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뻘건 쇳물 속 꺼먼 불순물…'AI의 눈'은 척척 잡아냈다

중앙일보

2026.02.19 12:0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지난해 제강공정에 AI 자율조업 도입을 마무리했다. 기존에는 사람이 직접 쇳물이 담긴 래들을 얼마나 기울일지 판단해 조이스틱으로 기울기를 조정하고, 쇳물 위에 떠있는 불순물(슬래그)를 긁어내는 설비 '스키머'를 조이스틱으로 상하·좌우로 조정해 슬래그를 긁어냈다. 하지만 AI자율조업 도입으로 AI 카메라의 판단아래 래들 기울이기·스키머 작동이 사람의 개입 없이 순차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사진 포스코
지난 10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3제강공장 예비처리 운전실. 인공지능(AI) 영상 분석 카메라가 섭씨 1600도가 넘는 쇳물이 가득 담긴 140t 래들(Ladle·쇳물을 옮기는 용기)을 포착해 화면에 띄웠다. 그러자 시뻘건 쇳물은 하얗게, 쇳물 위에 떠 있는 불순물(슬래그)은 검은색으로 뚜렷하게 구분돼 나타났다.

제강의 첫 단계인 ‘예비처리’ 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쇳물에서 슬래그를 분리하는 일이다. AI카메라가 래들 속 쇳물 높이를 파악하자 래들이 천천히 기울며 까만 슬래그를 쏟아냈다. 그러더니 슬래그 바로 아래 쇳물이 쏟아지기 직전에 딱 맞춰 멈췄다. 이어 AI가 영상을 분석해 남은 슬래그를 없앨 방법을 결정했고, 그 결정대로 로봇팔(스키머)이 불순물을 긁어내 깨끗한 쇳물을 만드는 작업을 완수했다.

이런 일련의 공정은 지금까지 사람이 직접 눈으로 래들을 얼마나 기울일지 판단하고, 손으로 조이스틱을 움직여 로봇팔을 조종하며 하던 작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AI기반 자율조업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작업자들은 위험한 고온의 설비에서 떨어진 운전실에서 공정 관리와 감독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제강공정은 용광로에서 나온 쇳물의 ‘신분(급)’을 결정하는 제철소의 핵심 공정이다. 예비처리→ 전로(쇳물의 성분을 제어하는 공정)→ 2차 정련(RH) 과정으로 구성되는데, 포스코는 이 모든 과정에 AI 자율조업을 도입했다. 그 첫 단계인 슬래그 제거는 기존 자동화 공정만으론 한계가 뚜렷했다. 워낙 뜨거운 쇳물이 흐르다 보니 수식 계산 모델로는 오차가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인간의 패턴을 20개 정도로 추려 영상인식 AI에 학습시켰고, AI가 스스로 판단해 슬래그를 긁어내도록 했다. 마치 사람처럼 이리저리 흩어진 슬래그를 한데 모아 한 번에 긁어내는 방식도 습득했다. 인간 특유의 노하우인 ‘암묵지’를 AI가 영상 데이터로 흡수한 것이다. 김민혁 포스코 제강부제강기술개발섹션 사원은 “사람의 눈과 손처럼 신체적 감(感)에 의존하던 비정형 작업은 자동화가 어려웠는데, AI 카메라로 학습하니 효율이 높아졌다”고 했다. 포스코에 따르면 제강공정 AI 자율조업 도입으로 작업자 간 편차가 줄고, 작업 시간도 10% 단축해 생산성도 높아졌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3제강공장 예비처리 운전실에서 작업자가 제강공정의 첫 단계인 예비처리공정을 수동으로 조작하고 있다. 과거에는 오랜시간 조이스틱 미세 조정으로 인한 신체 부담이 컸다면, AI자율조업 도입 이후에는 '관리·감독'으로 주요 업무가 바뀌었다. 사진 포스코
제철소의 AI 전환은 노동 방식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2023년 포스코에 입사한 이정훈 씨는 AI 자율 조업 도입 전·후 변화를 직접 체감했다. 이 씨는 입사 초기 조이스틱 조작을 배우며 ‘손목의 감’을 익히는 훈련을 했다. 1회 작업당 400회 이상 설비를 조종하며 12시간을 일하니 손목이 뻐근해졌고 ‘일하기 위해’ 선배들이 전수해 준 갖가지 손목 보호 자세를 익혀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오롯이 AI시스템 감독에 집중한다. 이 씨는 “신체 부담이 크게 줄었고, 쇳물을 쏟는 등 대형 사고에 대한 심리적 부담도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최재식 한국과학기술원(KAIST) AI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고품질 철강 역량은 AI로 전환할 수 있는 암묵지가 많이 쌓여있다는 의미도 된다”며 “AI가 노동을 대체한다는 관점보다 철강과 AI를 접목한 새로운 관리감독 일자리가 열리고, 저출산·고령화 인력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정([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