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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쇼트트랙 교과서 시절 끝나…'초격차' 해법은 양궁에 있다" [곽윤기의 꽉잡은 분석]

중앙일보

2026.02.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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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기 중앙일보 쇼트트랙 해설위원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이 예상대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힘든 시간을 견뎌온 후배들이 결실을 본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특히 오랫동안 묵묵히 고생해온 이소연이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건 순간은 가슴이 뭉클했다.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최고참이자 계주 멤버로서 그 무게감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후배들의 환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승부처는 냉철한 판단력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캐나다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완벽하게 기회를 기다릴 줄 아는 영리한 레이스였다. 특히 에이스 최민정은 상대 선수와의 엉킴에 휘말리지 않는 노련함을 보였다. 백미는 4바퀴를 남긴 지점이었다. 심석희가 뒤에서 밀어주고 최민정이 폭발적으로 추월에 나선 장면은 이번 경기 최고의 승부수였다.

남자 계주 역시 기대해볼 만하다. 특히 3번 주자가 유력한 이정민의 컨디션이 예사롭지 않다. 안쪽 파고들기 능력만큼은 나보다 한 수 위다. 임종언과 황대헌이 이끄는 초반 기세도 훌륭하지만, 경쟁국들의 전력도 만만치 않다. 결국 승부처는 경기 후반인 3·4번 주자 구간에서 갈릴 것이다.

하지만 우승의 기쁨 뒤에 감춰진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세계 쇼트트랙은 이미 상향 평준화됐다. 캐나다와 네덜란드의 성장이 눈부시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1위(금2·은3)를 하긴 했지만 네덜란드(금2·은1·동1)와 거의 격차가 없었던 걸 잊어선 안 된다. 과거에는 한국의 기술과 장비를 세계가 벤치마킹했지만, 이제 그들은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훈련법과 기술을 완성했다.

과거 한국 쇼트트랙이 ‘교과서’였던 시절, 우리 방식은 명확했다. 후방에서 기회를 엿보다 경기 중반 흐름을 잡고 막판에 추월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다른 나라들은 우리가 흐름을 잡지 못하도록 초반부터 속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야성적인 스케이팅’을 구사한다. 이제는 우리도 경쟁국들의 새로운 훈련법을 유연하게 수용해야 한다.

장비의 우위도 옛말이다. 과거엔 한국인의 섬세한 손기술이 최고였지만, 이제는 첨단 기술의 영역이다. 맞춤 양복을 제작하듯 날의 기울기와 휘는 각도(벤딩)를 정밀하게 측정해 세팅하는 기술이 보편화됐다. 장비 조건이 평준화되니 자연스레 피지컬이 앞선 서구권 선수들의 퍼포먼스가 돋보일 수밖에 없다. 양궁처럼 압도적인 ‘초격차’를 유지하려면 선수와 지도자, 행정가 모두가 뼈를 깎는 혁신에 나서야 한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뿌리가 흔들리는 선수층 문제다. 저출산 여파는 빙판 위라고 예외가 아니다. 초등학교 대회가 눈에 띄게 줄었고, 선수 수보다 실업팀 숫자가 더 많은 ‘역피라미드’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아이들이 쇼트트랙 외에도 꿈을 펼칠 선택지가 많아진 시대다. 선수가 늘어날 수 있는 환경 개선 없이는 과거의 영광은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 후배들의 금메달이 단순한 축제를 넘어, 한국 쇼트트랙의 미래를 고민하는 시작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곽윤기 중앙일보 쇼트트랙 해설위원





김효경([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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