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사건 선고에서 언급한 영국의 왕 찰스 1세의 사형 선고 외에도 해외 각국의 내란 판례를 가져와 판결문에 인용했다. 특히 1930년대 일본에서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두 건의 내란 사건을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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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日 군부 쿠데타’…판결서 내란 인정 여부는 달라
19일 중앙일보가 확인한 1133쪽 분량의 12·3 비상계엄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1932년 일본 해군 장교들이 총리 이누카이 쓰요시를 암살한 ‘5·15 사건’과 1936년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인 ‘2·26 사건’ 판결을 분석했다.
이중 ‘5·15 사건’은 1932년 5월 15일 우익 청년장교들이 총리 관저에 난입해 총리를 암살한 사건이다. 사건 주동자들은 군축 조약에서 일본만 손해를 봤다고 여겼고, 호헌파로서 군의 축소를 지지하던 이누카이 총리를 살해했다.
당시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이 사건을 ‘내란’으로 보지는 않았다. 피고인들의 목적이 ‘국헌 문란’이라기보다는 특정 정치인 살해라는 테러행위에 불과하다고 봤다.
최고재판소는 1935년 이 사건에 대해 “조헌(朝憲·조정의 법규)을 문란케 함이란 내각제도를 불법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라며 “수상을 습격한 경우 내란의 발발을 초래할 우려가 없다고 볼 수 없으나, 내각제도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려는 것이 아닌 이상 ‘정부를 전복하는 행위’라 볼 수 없다”고 했다.
반면 4년 뒤 벌어진 ‘2·26 사건’은 실패한 쿠데타지만 내란으로 인정됐다. 이는 1936년 육군 청년 장교들을 중심으로 1483명의 병사들이 봉기해 장관급 관료들을 살해한 사건이다. 이들은 원로 정치인들을 제거하고 쇼와 일왕의 친정을 실현하는 ‘쇼와 유신’을 통해 국가를 개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일왕을 위해 벌인 일종의 ‘친위 쿠데타’였지만, 일왕이 격분해 이를 거부하면서 이들은 재판(군법회의)에 넘겨져 장교 17명이 반란죄로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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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사례 들어 “내란죄 본질은 주권 침해”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 지귀연)는 “5·15 사건의 경우 범행 이후 군사정부가 수립될 여지가 있지만, 이는 총리 살해의 직접적 목적이 아닌 부수적 목적이라고 (일본 법원이) 봤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와 유사한 2·26 사건에서 (일본) 군법회의는 동일한 요인 암살이라는 행위가 있었으나, 위 행위가 단순 테러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일본 내각 자체의 암살 및 이에 따른 천황중심제의 복권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에 주목해 국헌문란의 목적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약 17쪽에 걸쳐 내란죄의 연원과 각국의 판례 및 이론을 소개한 재판부는 내란의 개념이 크게 확대된 계기가 영국 국왕 찰스 1세의 판결이라고 봤다. 전통적으로 로마법에서는 ‘황제에 대한 반역행위’를, 게르만법에서는 ‘주군에 대한 충성의 파기’를 반역죄로 처벌해왔으나, 찰스 1세 처형으로 “국왕 역시 의회를 공격해 반역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고 했다. 찰스 1세는 1649년 ‘잉글랜드 의회, 신민들에 대한 적대적 전쟁행위’로 사형을 선고받고 참수됐다.
이같은 설명 후 재판부는 “내란죄의 본질은 주권 침해에 있다”고 짚었다. 지 부장판사는 19일 선고문을 읽어내려가면서도 “결론적으로 법원이 판단한 핵심은 군을 국회에 보낸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국가권력의 또다른 축인 입법이나 사법의 권능을 침해할 수 없다”며 “그런 권능을 침해하는 행위는 내란죄에서 처벌하고자 하는 본질인 주권 침해의 한 모습”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