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어느 이른 새벽 충남 서산시 삼길포항. 그것은 흡사 영화 ‘파 앤드 어웨이’의 클라이맥스를 연상시켰다. 1892년 아일랜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조셉 다넬리(톰 크루즈)는 지주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자신의 땅을 갖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에 도착했건만 조셉의 고난은 계속된다. 벼랑 끝으로 몰린 조셉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클라호마에서 열린 랜드 런(land run)에 참가한다. 남보다 빠르고 멀리 달려 원하는 땅에 깃발을 꽂으면 그곳의 주인이 되는 랜드 런은 미국 서부 개척 시대 오클라호마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꿈과 인생, 심지어 목숨까지 건 수백 명이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은 기막힌 스펙터클이었다.
동트기 전 일제히 빠른 속도로 삼길포항을 떠나는 30여 척 배들의 모습 역시 ‘파 앤드 어웨이’의 랜드 런 못지않았다. 선체를 모두 노란색으로 칠한 이 배들은 잠수기선이다. 잠수기란 잠수부가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어업을 말한다. 이맘때 서해 삼길포항을 비롯해 보령항, 오천항을 이른 새벽에 떠나는 잠수기선은 대부분 키조개 채취가 목적이다.
조개류 중에서 가장 큰 키조개는 수심 5~50m의 진흙 바닥에 몸을 박고 3~4년을 온전히 그곳에서 산다. 성장하는 동안 뾰족한 아래부터 진흙 속에 깊이 박고, 부채의 가장자리처럼 넓은 부분은 밖으로 드러낸다. 잠수부는 바다 밑바닥을 걸으며 갈고리로 키조개의 날개 부분을 찍어서 캔다.
이맘때 서해에서 키조개 잠수기 조업이 활발한 것은 지금부터 키조개가 맛있어지기 때문이다. 키조개는 산란기에 접어든 7월과 8월을 제외하고는 연중 채취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해산물이 그렇듯 산란을 준비하는 2월부터 5월까지를 절정으로 본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무작정 조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해는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물살이 빨라 사리 때는 조업이 힘들고, 조금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어족 자원 보호를 위해 배 한 척당 하루에 2000개까지만 잡도록 쿼터를 정해 놓았다. 덜 잡힐 때는 있어도 더 잡는 경우는 없다.
항구를 떠난 배들이 무섭게 질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련한 선장이 미리 점찍어 둔 포인트를 선점해야 그날의 조업 성공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포인트에 도착한 잠수기선이 닻을 내린 다음부터는 오로지 잠수부의 몫이다. 37㎏의 납덩어리를 몸에 단 잠수부는 생명줄인 공기 호스 하나에 의지한 채 바닷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물살이 약한 조금 때고 잠수부의 가슴에 강력한 라이트를 부착했지만 바닷속 시계는 고작 2m 남짓.
이 탁한 바다에서 대체 뭘 어떻게 캘까 싶었는데, 잠수부는 거의 속보 수준으로 바닷속을 걸으며 갈고리로 바닥을 찍었다. 그때마다 큼지막한 키조개가 쑥쑥 올라왔다. 잠수부 몸에 부착한 카메라로 그 모습을 지켜봤지만, 보고도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남는 의문은 과연 혼자서 2000개를 캘 수 있을까 하는 것. 그런데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바다에서 걷어 올린 그물망에는 500여 개가 넘는 키조개가 담겨 있었다. 그물망과 함께 배 위로 올라온 잠수부는 믹스커피 한 잔을 직접 타서 마시더니 다시 바다에 몸을 던졌다. 경력 20년 차 잠수부는 그렇게 단 3시간 만에 2000개의 키조개를 캐고 그날의 조업을 마쳤다.
키조개가 조개류 중에서 가장 큰 몸집을 가졌지만 인간이 키조개에게서 원하는 건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일부가 키조개의 몸값을 결정한다. 바로 키조개의 패주(조개관자)다. 키조개는 몸집 만큼이나 큰 패주를 자랑한다. 키조개가 커서 패주도 크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오해다. 조개류의 패주는 껍데기를 여닫는데 사용하는 근육이다. 여느 조개는 이동과 호흡 등의 이유로 패주의 운동량이 많고 그만큼 근육이 발달한다. 그래서 작고 질기다. 하지만 진흙 속에 몸을 고정한 채 성장하는 키조개의 패주는 운동량이 적어서 비대해지고 부드럽다. 인간들은 이걸 기막히게 알아챘다.
키조개 패주에 버금가는 것이 가리비 패주다. 키조개보다 크기는 작아도 맛과 몸값에 있어서는 키조개 못지않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패주는 그 자체가 근육이기 때문에 조직과 결을 가진다. 가리비 패주는 단맛이 탁월하고 조직이 부드러워 씹는 맛도 부드럽다. 키조개는 단맛은 가리비에 못 미치는 대신, 감칠맛이 탁월하고 조직이 촘촘해 가리비보다 쫄깃하다. 가리비든 키조개든 패주는 버터와 찰떡궁합이다. 그래서 스테이크 용으로는 가리비보다 키조개 패주를 더 선호한다.
키조개 패주의 단맛, 감칠맛, 육즙, 조직감을 두루 즐긴다는 차원에서는 전을 으뜸으로 친다. 얇게 저민 패주에 달걀 옷을 입히고 노릇하게 부쳐낸 키조개전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하는 맛이다. 대신 식기 전에 먹어야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광주광역시 내 육전 전문점에 가면 육전과 더불어 최고의 키조개전을 만날 수 있다.
키조개를 지역 특산물로 육성하고 있는 전남 장흥군은 지역에서 생산된 표고버섯·한우·패주를 돌판에 구워 먹는 ‘장흥삼합’이 유명하다. ‘장흥삼합’은 구이도 구이거니와 전골로 끓이면 이 계절에 안성맞춤이다. 키조개 유통량이 가장 많은 충남 오천항 일대에서는 최근 들어 키조개 두루치기가 인기다. 돼지고기를 무쳤을 때 군침 돌게 하는 맛있는 두루치기 양념에 키조개가 들어가니, 이건 뭐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음식의 탄생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것에 관심 많은 맛칼럼니스트다. 현재 사단법인 부산로컬푸드랩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