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대표 체제의 국민의힘이 ‘윤석열’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 발을 빼려 해도 다른 한 발이 더 깊게 빨려드는 형국이다. 윤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에도 이른바 절윤(絶尹·윤석열 전 대통령과 관계 단절)하지 못했다. ‘윤 어게인’ 구호만 울려 퍼지는 반향실(에코 체임버)에 갇혀 있는 한 더 늪으로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장 대표는 20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 1심 선고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갖고 “사과와 절연의 주장을 반복하는 건 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 분출하는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요구를 일축하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분열은 최악의 무능”이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이름을 이용하는 세력, 대통령과의 절연을 앞세워 당을 갈라치기를 하는 세력, 단호하게 절연해야 할 대상은 오히려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오히려 윤 전 대통령을 감쌌다. 그는 “윤 전 대통령은 탄핵을 통해 계엄에 대한 헌법적·정치적 심판을 받았고 지금 사법적 심판도 받고 있다. 그리고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으로부터 정치적 심판을 받았다”고 했다. 지난달 7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비상계엄에 대해 공식 사과했던 장 대표와는 거리가 있는 발언이었다.
판사 출신인 장 대표는 재판부의 1심 판결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줄곧 ‘계엄이 곧 내란이 아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그러나 1심 판결은 이런 주장을 뒤집을 충분한 근거와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확신 없는 판결은 양심의 떨림이 느껴지기 마련”이라며 “판결문 곳곳에서 발견되는 논리적 허점들이 지귀연 판사가 남겨놓은 마지막 양심의 흔적들이라 믿는다”고 했다.
다만 이날 발언은 지도부 전체를 대표한 의견은 아니었다. 회견 직전 열린 지도부 회의에선 “다른 건 몰라도 1심 판결을 비판하는 부분은 들어내야 한다”거나 “이대로 입장이 나가면 사법 불복으로 비칠 우려가 크다”는 만류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전날 이미 사과했었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발언으로 국민의힘은 ‘윤석열’에 더 깊게 빨려 들어갔다.
공교롭게 윤 전 대통령도 이날 국민에게 사과하면서도 법원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윤 전 대통령은 “법과 양심에 의한 판결을 기대하기 곤란한 상황에서 항소를 통한 법적 다툼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깊은 회의가 든다”고 했다. 당 안팎에선 두 사람의 메시지가 묘하게 겹친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여권에선 ‘윤장동체’(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란 비아냥이 나왔다. 윤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을 향해서도 “우리의 싸움은 끝이 아니다. 뭉치고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이렇듯 두 사람, 특히 장 대표의 발언에 지방선거를 100여 일 앞둔 시점에서 당의 노선과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은 격화하는 분위기다. 계파를 넘어 보수 진영을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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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 ‘마이웨이’에
…원로들 “누구랑 싸울지 분간 못해”
당장 한동훈 전 대표부터 “보수 재건을 위해 장동혁을 끊어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보수가 죽는다”고 했다. 장 대표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온 오세훈 서울시장도 “국민의힘은 특정 개인의 정치적 노선 위에 세워진 정당이 아니다. 고집스럽게 국민 대다수 정서와 괴리된 주장을 반복하는 것으로는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을 수 없다”며 “보수는 특정인의 방패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전판이어야 한다”고 했다. 비대위원장을 지낸 김용태 의원은 페이스북에 “국민보수 노선을 포기하고 윤 어게인을 선택한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고 썼다.
장 대표와 ‘쌍특검(통일교·공천뇌물) 연대’를 말하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장 대표의 발언과 관련, “정당이 국민 앞에 서는 방식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원로그룹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당 대표가 누구랑 싸워야 하는지 분간을 못 하고 ‘윤 어게인과 절연하라고 하는 사람과 절연하겠다’는 한심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이준석이도 잘라내고 한동훈이도 잘라냈고, 하다 보니까 계엄령까지 간 것 아니냐”며 “힘을 합쳐도 부족할 판에 자기 진영의 뺄셈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야당으로서의 존재 이유조차 망각해 버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보수 진영에서 두 차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등판했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다시 살아나려면 지난해 4월 4일(윤 대통령 파면) 직전의 상황에 대해선 다 잊어버려야 된다”며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결과가 굉장히 암담하게 될 것이다. 당의 장래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고 당 대표를 견제해야 하는 중진이라는 사람들이 눈치만 보고 있기 때문에 당의 발전이 없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힘은 더 시끄러워졌다. 장 대표와 ‘윤 어게인’의 결합도는 더 높아졌고 지방선거 공천권을 좌지우지할 자리에 이미 장 대표와 가까운 이들이 포진해 있다. 하지만 당내 반발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이성권 의원은 “장 대표의 말은 국민과 절연하겠다는 것”이라며 “(초재선 의원 모임인) 대안과미래뿐만 아니라 개별 의원이 장 대표 회견에 충격받고 곤혹스러워하는 의견이라 어느 형태로든 의견이 분출될 것”라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100여 일 앞두고 국민의힘이 전열 정비는 커녕 더한 분열로 나아가는 셈이다. 당을 격량으로 몰아넣은 장 대표는 이날 당 인사들과 대화하는 대신, 충남 아산의 현충사와 예산 수덕사를 잇달아 방문했다. ‘사즉생 생즉사(死則生 生則死)’의 절박감이라고 한 지도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한편 3·1절에 맞춰 당명 개정을 추진 중인 국민의힘의 새 당명 후보로 ‘미래연대’와 ‘미래를여는공화당’ 등 2개가 압축됐다고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가 전했다. 민주공화당·다함께공화당·자유민주당·함께하는공화 등도 여전히 당명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