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전시는 다음 세 가지 뿐이다. 공룡전, 미라전, 인상파전”.
전시 관계자가 내게 던진 농담인데 절로 공감이 된다. 인상파 덕분에 미술도 공룡이나 미라만큼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니 인상파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미술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대형 기획전, 이른바 소위 블록버스터 전시에서 인상파 미술은 늘 주목받아 왔다. 그런데 올해는 그 쏠림이 유난하다. 서울의 경우 지난겨울부터 동서남북에서 인상파 전시가 꾸준히 열렸다. 특히 르누아르가 그린 ‘피아노 치는 소녀들’의 유화 버전 5작품 중 2작품이 동시에 서울에서 전시되는 기현상까지 일어났다.
인상파 미술에 대한 쏠림 현상은 일차적으로 대중들이 인상파 미술을 선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상파 미술은 한마디로 밝고, 빠르고, 가벼운 미술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색감은 밝고, 필치는 빠르고, 주제 의식은 가볍다. 이전 미술이 도덕책같이 무거운 그림이라면, 인상파 미술은 일상의 평온함을 스냅샷으로 속절없이 담아낸다. 예를 들어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은 중산층 가정의 행복한 하루가 밝은 색채와 솜털처럼 몽글몽글한 붓 터치로 온화하게 그려져 있다. 누구나 꿈꿀만한 행복한 가정집의 한 장면이다.
인상파 미술은 미술사적으로 전통 회화의 종착역이자 현대미술의 출발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풀어보면 전통 회화가 주는 주제와 형태의 명료성과 현대 회화의 추상성이 균형 있게 배어 있다는 점이 인상파 미술의 매력이다. 때문에 인상파 미술은 미술 감상에 있어 입문하기 좋은 그림으로 인정되어, 초·중·고 교과서뿐만 아니라 일반 미술 교양서에서도 자주 소개된다. 이 같은 낯익음은 인상파 전시 유행을 설명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역사적 의의와 시각적 감동을 주는 미술은 세상에 적잖이 많다. 그럼에도 대형 기획전으로 인상파 전시만이 계속 열리는 이유는 한국 미술 전시계가 처한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 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열리는 대형 기획전의 전시 예산은 50억원 정도까지 든다고 한다. 작품 대여료부터 보험료, 운송료, 전시장 대관 및 공간연출, 진행, 홍보 등. 이 액수면 국·공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1년 전시 예산에 해당한다. 즉, 대규모 해외 전시를 국내에 들여오려면 박물관의 자체 예산으로는 진행할 수 없어, 결국 외부 기획사와 협력해 진행하게 된다. 다시 말해 기획사가 돈을 대고, 박물관은 전시 공간을 대관하면서 기획에 일부 관여하는 방식으로 전시가 꾸려진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을 보노라면 현재의 인상파 전시의 쏠림 현상이 설명된다. 기획사는 투자금 이상의 이윤을 얻어야 하기에 흥행이 보장된 전시를 유치할 수밖에 없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전시를 넘어선 전시에는 관심을 줄 여력이 없으니, 결국 흥행이 보장된 인상파 전시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계산기를 두들겨 보자. 50억원이 투여된 전시에서 수익을 내려면 입장권이 2만원일 경우 순수 유료 관람객을 25만 명 이상 확보해야 한다. 할인권이나 무료 초대권을 포함한다면 기획사 입장에서는 거의 50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해야 어느 정도 수익을 기대하면서 다음 전시를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구조가 지속된다면 어떨까. 앞으로도 매년 인상파 전시만 계속 봐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대안적 모델이라면 인상파전 같은 대중적인 전시와 함께 실험적인 동시대 주제의 전시가 동등하게 주목받는 상황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자본의 논리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박물관·미술관이 자체 예산으로 대형 기획전을 방학 같은 성수기에 열어야 한다. 전시 예산이 대폭 증액되면 좋겠지만, 기획을 통해서도 해외 순회전에 뒤지지 않는 내실 있는 전시는 가능하다고 본다.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의 강점이라면 동급의 세계 박물관·미술관과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이고, 때에 따라 작품 대여료 없이 작품을 빌려 올 수도 있는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 지난 1년간 본 전시 중에서 기억에 남는 전시를 손꼽으라면 호암미술관의 ‘겸재 정선’전(2025년 4월 2일~6월 29일)과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신상호’전(2025년 11월 27일~2026년 3월 29일)이라고 답할 것 같다. 전자는 조선 후기의 대가 겸재의 작품 세계를 충실히 보여주는 모범적인 전시였고, 후자는 미술의 힘이 재현을 넘어 세상을 신비롭게 바라보는 계기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인상적인 전시였다.
공교롭게도 두 전시는 서울 밖인 용인과 과천에서 열렸다. 참고로 겸재 정선전의 입장료는 1만4000원, 신상호 전시의 입장료는 3000원으로 일반적인 해외 기획전의 입장료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미술 전시계의 메인 무대에 오르더라도 성공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다시 말해 겸재 정선이나 신상호 작가의 작품 세계가 인상파에 뒤지지 않을 만큼 시각적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이 같은 나의 견해에 대해 “막상 무대에 올려놨는데 관객이 안 찾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반박할 수 있다. 이런 우려를 떨쳐내지 못한다면 우린 앞으로도 계속 인상파 전시만을 봐야 한다. 아무리 인상파 미술을 사랑하더라도 이런 무한 반복감은 좀 갑갑하지 않은가. 인상파를 넘어 미술에 대한 시야를 더 확장시켜 줄 수 있는 색다른 대형 기획전시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