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외국에서 오랜 기간 일하던 아버지 친구분이 우리 집을 방문해서 외국 생활을 얘기하며 일할 때 커피를 물처럼 마신다는 얘기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 커피를 마시고 출근해서 아침에 한 잔 더 마시고 오후에도 회의가 있거나 잠시 시간이 나면 커피를 한 잔 더 마시는 일상을 되돌아 보면 물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시고 있지 않나 싶다. 여러 통계 자료에서 한국인 1년간 커피 소비량이 전세계 평균의 2~3배가량이라고 들었고, 길거리에 수많은 커피 전문점을 보면 커피는 한국인의 일상의 음료라 하겠다. 이번엔 커피가 심장, 특히 부정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뤄보고자 한다.
커피, 불면증에 역류성 식도염 악화시키기도 커피는 카페인을 포함하고 있는 대표적인 음료이다. 카페인은 중추신경계 자극체이고, 잔틴의 유도체이다. 커피의 coffe- 와 물질을 뜻하는 -ine 가 붙어서 caffeine 됐다는 어원에서 보듯 커피콩에서 추출되면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대문호인 괴테를 친구로 둔 독일의 과학자 프리들리프 페르디난트 룽게가 19세기 초에 추출했는데, 왜 커피가 사람들을 깨우는 효과가 있는지 알려달라는 괴테의 요청을 받아 연구하다가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병원에서는 각성을 위한 보조제, 조산아 무호흡증, 두통 치료에 사용한다. 이때 대개 사용하는 용량이 ㎏당 5~20㎎을 사용한다. 보통 커피 한 잔에는 카페인 100~150㎎이 포함되어 있고, 식품의약품안전처의 1일 카페인 최대 섭취량은 성인 400㎎ 이하, 임산부 300㎎ 이하라고 하니 하루 3잔까지는 허용범위 내라고 할 수 있다. 커피를 하루 4잔 이상 마시면 병원에서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용량에 상응하는 정도이다.
카페인의 주의사항에 대표적인 것이 심장에 대한 것인데, 고용량에서 빈맥, 조기박동(엇박), 여러 심장 부정맥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일반적으로 부정맥·두근거림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추천하지 않는다. 특히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관상동맥 중재술 혹은 우회술을 받은 분들에게 몇 주 동안은 카페인을 섭취하지 말 것을 권장한다. 이런 이유로 외래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커피 마셔도 되나이다. 그 외에도 각성으로 인한 불면증, 두통을 일으키기도 하고 위산 분비가 증가되어 위궤양, 역류성 심도염을 악화시키기도 하고, 철분·칼슘 흡수를 방해하기도 한다.
지난해 말에 미국의사협회저널에 커피에 대한 재미있는 논문(DECAF 연구)이 발표되었다. 심방세동이 있는 환자들 200명을 각각 100명, 커피군(적어도 한 잔 이상 커피 복용)과 절제군으로 배정하고 6개월 동안 심방세동의 재발률을 비교하였다. 커피군에서는 대략 하루 한 잔 커피를 마셨는데, 심방세동 재발률은 커피군에서 47%, 절제군에서 64%으로 오히려 커피군에서 낮았고, 그 외 이상반응 발생률은 차이가 없었다. 이 연구의 결과는 커피가 심방 부정맥을 유발한다는 것과 반대의 결과이다. 커피에는 카페인을 비롯한 수많은 생물학적 화합물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화합물들의 이로운 효과가 오히려 심방세동 재발 위험을 실제로 감소시킬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또 같은 저널에 올해 커피에 대한 논문이 게재되었는데, 카페인 섭취와 인지기능, 치매 위험의 관계를 비교하였다. 10만 명 이상을 사람들을 카페인 섭취에 따라 4군으로 나눠서 치매 발생과 인지기능 저하를 추적 관찰했다. 카페인 함유 커피 섭취량이 많을수록 치매 위험이 낮아지고 인지 기능 저하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디카페인 커피 섭취는 치매 발생 감소나 인지 능력 향상과 관련이 없었다. 이러한 효과는 카페인을 함유한 하루 2~3잔의 커피, 하루 1~2잔의 차에서 가장 크게 관찰되었다. 심방세동이 매우 강력한 인지기능 저하, 치매의 위험인자임을 고려하면 심방세동 환자들에서 적당한 양의 카페인 섭취가 이로울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연구 결과이다.
외래에서 커피를 마셔도 되는지를 묻는 환자분들(대부분 부정맥 환자)에게 이렇게 답변을 드린다. “술과 달리 커피는 개인 차가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커피를 마셨을 때 느끼는 불편감이 심하다면 피해야겠지만 1~2잔 정도의 커피를 마셨을 때 별다른 증상이 없다면 커피를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설탕 추가를 최소화하고 지나치게 진한 커피는 피해는 것이 좋습니다.” 경험에 근거해서 이렇게 설명을 드렸는데, 위의 두 연구 결과를 보면서 내 경험이 틀리지 않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커피를 안 마시던 분들도 보약처럼 마시려고 노력하거나 지나치게 커피를 많이 마시는 습관을 유지할까 걱정이 된다. 위의 두 연구 결과는 커피의 치료 효과를 입증하는 결과가 아니라 하루 권장량 이하의 커피가 인체에 나쁘지 않음을 보여준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너무 커피를 마시고 싶은 분들이 부정맥이 있다는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지나치게 커피를 절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고 커피 한 잔에도 두근거림이 심한 분들이 애써 참아가며 커피를 마시는 것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
디카페인은 치매 발생 감소와 관련 없어 가끔 드라마에서 졸음을 피하기 위해 커피를 마셔 가며 일하거나 공부를 하다 코피를 흘리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다. 과거에는 커피가 각성의 도구 같은 나쁜 이미지가 있었다면 요즘의 커피는 나른한 오후에 맛있는 씁쓸함에 잠시의 여유 갖는 쉼의 이미지이다. 심장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맛있는 커피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일영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부정맥 중재시술 인증의로 부정맥 환자 시술 및 치료에 15년 이상의 임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대한부정맥학회 총무이사를 역임하고 현재 재무이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