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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성 지키려 후임 알박기? 라가르드 총재 '조기 사임' 딜레마

중앙일보

2026.02.20 13:00 2026.02.2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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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조기 사임설이 확산하며 유로존이 술렁이고 있다.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정당의 집권 가능성이 커지자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선제적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이러한 움직임이 오히려 ECB의 정치적 중립성을 흔드는 역설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MSC)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생각에 빠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18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라가르드 총재가 내년 10월로 예정된 8년 임기가 끝나기 전에 사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라가르드 총재의 이례적인 중도 하차 가능성은 내년 4월 예정된 프랑스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있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승리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헌법상 3연임이 불가능한 에마뉘엘 마크롱 현 프랑스 대통령이 퇴임 전에 라가르드의 후임자를 지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겠다는 계산이다. ECB 총재 선출은 공식적으로 유로존의 합의를 거치지만, 실질적으론 유로존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의 합의가 결정적 영향력을 갖는다.

이같은 움직임은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인 프랑수아 빌루아 드 갈로의 최근 행보와 궤를 같이한다. 그는 임기 만료 18개월을 앞둔 오는 6월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자선단체 합류를 이유로 들었지만, 마크롱 대통령이 그의 후임 총재를 지명할 수 있도록 물러났다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ECB 측은 “라가르드 총재는 현재 임무에 전적으로 집중하고 있다”며 “임기 종료와 관련한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국민연합’ 대표인 조르당 바르델라는 집권하면 프랑스 재정 악화를 해결하기 위해 ECB에 양적 완화(QE) 재개를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임 당대표인 마린 르펜은 유럽 통합에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고, 프랑스의 통화·재정 주권의 강화를 강조해왔다. 유로존이 프랑스 극우정당 집권이 미치는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블룸버그·로이터 등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라가르드의 조기 사임은 ECB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중앙은행에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앤드류 커닝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다른 나라들처럼 유럽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후보를 총재로 앉히기 위해 규칙을 어기려는 유혹에 빠진다면, 세계에서 가장 독립적인 중앙은행 중 하나라는 ECB의 이미지는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방준비제도(Fed)에 대한 지속적인 압박을 계기로 중요성이 더 커졌다. 라가르드 총재 역시 제롬 파월 Fed 의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의 독립리서치기관 ‘씬 아이스 매크로이코노믹스’의 설립자 스피로스 안드레오풀로스는 “Fed가 처한 지금의 상황은 결코 본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라며 “(조기 사임은) 극우 세력의 유용한 선거 운동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하다”고 짚었다. 다만 베를린 DIW 싱크탱크의 거시경제 책임자인 알렉산더 크리볼루츠키는 “조기 사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반하는 이해관계를 가진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집권하기 전에, ECB의 독립성을 옹호할 적임자를 선출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선제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블룸버그의 이코노미스트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라가르드 후임으로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클라스 노트와 현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인 스페인의 파블로 에르난데스 데 코스가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박유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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