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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재밌는 만남 원해"…'연애 금지' 사우디에서 무슨일이

중앙일보

2026.02.20 13:00 2026.02.2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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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9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In the Blink of an Eye)”라는 주제로 빛 축제 ‘누르 리야드(Noor Riyadh)’가 열렸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자료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재미있고 짧은 만남 원해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틴더를 실행하면 이런 문구를 흔히 접할 수 있다. 별다른 소개 문구 없이 갈고리 이모지만 올려둔 계정들도 있다. “일회성 만남을 원한다”는 뜻이다. 영어로 갈고리(hook)는 일회성 만남을 의미하는 은어로 사용된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보도에서 중동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남녀가 유별했던 사우디 사회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 정책 ‘비전 2030’ 이후 자유 연애 문화에 물들어가고 있는 변화를 조명했다.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틴더'를 이용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왼쪽)과 남성. 남성의 사진 가운데 갈고리 이모지는 “일회성 만남을 원한다”는 뜻이다. 영어로 갈고리(hook)는 일회성 만남을 의미하는 은어로 사용된다. 사진 챗gpt



빈 살만의 프로젝트가 초래한 자유 연애 문화


비전 2030은 빈 살만이 왕세자에 임명되기 1년 전인 2016년부터 주도하고 있는 국가 대전환 프로젝트다. 이를 통해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여성의 사회·경제 참여 확대와 남녀 분리 원칙 완화다. 학교와 직장, 공공시설, 각종 행사나 공연에서 남녀 공간을 분리했던 과거와 달리, 이젠 남녀가 함께하는 모습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초·중등학교를 제외한 고등 교육기관에서도 남녀가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러자 자유 연애 문화가 확산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성인의 이름을 땄다는 이유로 사회적 금기였던 발렌타인데이에 연인들끼리 빨간 장미와 선물을 주고받고 있으며, 수도 리야드를 포함한 주요 도시들의 카페에선 젊은 남녀가 어울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고 WSJ가 전했다.

이같은 변화를 가속한 요인으론 틴더가 지목된다. 시장 정보 기업 센서 타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사우디에서 틴더를 포함한 상위 데이팅 앱의 다운로드 횟수 총합은 약 350만 건에 달했다. 약 3500만 명인 사우디 인구에서 10%가 이들 앱을 사용한 셈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AFP=연합뉴스


보수적인 이슬람 법 그대로…자유 연애는 비밀로?


일부 젊은이들은 틴더에서 얼굴과 이름, 학력 등 개인 정보를 과감히 공개하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다만 아직도 대부분 젊은 이용자들은 얼굴을 가리고 개인정보를 최대한 숨기는 등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다고 WSJ가 전했다. 틴더 등 데이팅 앱으로 이성을 만나도 비밀 보장이 되는 카페에 가거나 창문이 선팅 처리된 자동차 안에서 비밀 데이트를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유 연애 문화 확산과 법·제도 변화의 속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기반으로 하는 사우디 법 체계는 혼외 성관계와 동성애를 금지한다. 반면 최근 확산 중인 사우디의 자유 연애는 이같은 부분도 포함하기 때문에 괴리가 존재한다. 사회적 낙인이 두려운 젊은이들이 비밀스러운 자유 연애를 한다는 설명이다.

인권 단체들은 “일시적으로 단속이 완화됐을 뿐 여전히 법은 국가가 부정하다고 간주하는 합의된 성관계에 대해 태형, 징역, 심지어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종교계 일각에서 강하게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사우디의 한 이슬람 성직자는 “빈 살만 왕세자가 너무 멀리 가고 있다”며 “이슬람 정신을 수호하는 성스러운 위치에 있는 사우디가 아랍에미리트(UAE)처럼 되기를 바라나”라고 반문했다. UAE는 주류 판매에 제한이 없고 성매매가 사실상 묵인되는 등 중동에서도 자유로운 분위기의 국가로 손꼽힌다.



하수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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