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대법원이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세계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부과했던 상호관세를 위법이라고 판결하면서 당장 한국에 적용되던 15%의 상호관세는 원천 무효가 됐다. 한국에 대한 관세를 25%로 올리겠다던 압박 역시 법적 근거가 사라졌다.
그러나 자동차와 반도체, 철강 등 한국의 주요 대미 수출품은 대법원이 위법으로 판단한 대상이 아닌 품목별 관세로 묶여 있는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법 301조와 122조, 무역확장법 232조 등 대체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밝히면서 대법원의 판결을 관세 압박 해소가 아니라 오히려 불확실성의 확대된 계기로 봐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
“韓은 10%, 日은 12.5% 관세”
미 대법원이 이날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별 상호관세를 위법하다고 결론지으면서 대부분의 한국산 물품에 부과되는 관세는 0%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관세 부과로 실효성을 상실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양국의 합의 내용이 다시 유효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무역법 122조에 따른 10%의 글로벌 관세 부과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고 밝히면서, 해당 행정명령이 발효되는 3일 뒤부터는 10%의 일괄적 관세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 10%의 관세가 적용될 경우, 현재 적용되고 있는 15%의 상호관세는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던 25%의 관세보다는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미국과 FTA를 맺고 있기 때문에 경쟁국인 일본과 유럽연합(EU)에 비해 다소 유리한 위치가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일본과 EU의 경우 기본 관세 2.5%가 적용되기 때문에 10% 일괄 관세를 추가하면 관세율이 12.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 소식통은 “이론적으로는 FTA의 효과로 인해 경쟁국에 비해 관세에 따른 경쟁력을 다시 갖출 수 있게 된다”면서도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개별 국가와 무역협상을 별여왔기 때문에 실제 적용될 관세가 어떻게 결정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
“상호관세 ‘무효화’ 효과 제한적”
실제 상호관세를 무효화한 대법원의 결정이 한국에 주는 긍정적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은 위법으로 결론난 상호 관세와 무관한 품목별 관세 대상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22조에 따른 10% 글로벌 관세 부과 계획을 밝히면서 “232조 국가안보 관세와 기존 301조 관세는 전면 유지된다”며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건의 301조 및 기타 조사를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철강을 비롯해 자동차 등에 15%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했다. 아직 시행 전이지만 반도체도 해당 법에 따른 관세 부과 대상으로 분류된 상태다.
정부 소식통은 “경우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품목별 관세 부과 대상을 확장하거나 자동차나 반도체에 적용되는 관세율을 높여 협상력을 키우려 할 수도 있다”며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은 상호관세로 인한 압박보다 오히려 더 큰 부담을 받게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
“122조는 시간 벌기용”…불확실성 증폭
통상당국에선 “10%의 일괄 관세는 실제 압박 수단을 활용할 때까지 즉시 적용될 수 있는 브리지(bridge) 성격의 시간 벌기용 카드로 보인다”는 관측이 나온다.
122조에 따른 관세는 관세율이 15%로 제한되고, 150일마다 의회의 동의를 얻어 갱신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즉시 발효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카드를 꺼낸 배경에는 이 조항을 통해 일단 관세 정책을 이어가는 동시에, 의회의 동의까지 확보한 150일 내에 232조에 따른 품목 관세 및 301조에 따른 무역 상대국에 대한 반격 카드를 준비해 재차 압박을 가하겠다는 계산이 내포됐을 가능성이 있다.
외교가에선 미국의 징벌적 관세를 피하기 위해 원자력 추진 잠수함 확보와 조선 분야 협력 등 안보 의제까지 패키지로 묶어 타결한 한국 정부의 입장이 오히려 더 난처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카드를 잃은 것은 사실이지만 섣불리 기존 합의에 불만을 제기했다가 301조에 따른 불공정 무역대상국으로 지정돼 더 불리한 무역 협상 결과를 초래하거나 안보 관련 합의안까지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는 대법원 판결 직후 “미 연방대법원 판결 내용 및 미국 정부 입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국익에 가장 부합한 방향으로 검토해 나갈 예정으로, 미 행정부의 후속 조치를 지켜봐야 한다”는 극도로 신중한 입장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