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6월 시한 걸고 '전선 그대로 휴전' 중재안
러·우 모두 겉으론 난색, 속으론 전쟁 끝낼 명분 고심하며 실리 쟁탈전
[율곡로] 러·우 전쟁, '한국식 동결' 성사될까
美, 6월 시한 걸고 '전선 그대로 휴전' 중재안
러·우 모두 겉으론 난색, 속으론 전쟁 끝낼 명분 고심하며 실리 쟁탈전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참혹했던 전쟁은 6·25 한국전쟁이다. 3년여 기간 최대 400만 명이 죽거나 다친 것으로 추산된다. 2차 대전 후 단일 전쟁 최다 희생자다. 특히 민간인 사상 비율이 약 70%에 달해 민간인이 가장 큰 피해를 봤다. 2차 대전 뒤 일어난 5대 전쟁 중 지속 기간이 가장 짧은데도 인적 피해는 가장 큰 생지옥이었다. 여기엔 미국을 위시한 자유 진영과 소련·중국을 앞세운 공산 진영이 정면충돌한 지점이라는 지정학 요인이 작용했다.
언급한 5대 전쟁 중 하나는 현재진행형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면전이 만 4년을 코앞에 둘 만큼 장기화했다. 한국전쟁과 러·우 전쟁은 여러모로 닮았다. 우선 개전 배경에 사실상 러시아가 있다. 한국전은 소련의 승인과 지원을 받은 북의 남침으로 일어났고, 러·우 전쟁은 러시아가 시작했다. 옛 소련은 애치슨 라인으로 방위선을 내린 미국이 한반도 사태에 불개입할 거라 오판했고, 지금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를 단기간에 점령하면 미국이 묵인할 거라 오판했다.
한국전쟁은 미군-연합군(유엔군)과 냉전 중이던 소련-중공군이 한반도에서 직간접 충돌한 대리전 성격이었다. 신냉전을 가속한 러·우 전쟁 역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를 견제하고, 러시아는 북한과 이란 등의 측면 지원을 받는 진영 대결 양상을 보인다. 세력 간 전면전이니, 최첨단 무기 시험장이 된 것도 같다. 개전 1년여를 지난 이후 전선이 고착하며 소모전 양상으로 흐른 것도 두 전쟁의 공통점이다.
70여년 시차를 둔 두 전쟁의 결말마저 흡사하게 흘러간다. 이른바 '한국식 동결'(Korean-style Freeze)이 전쟁을 끝낼 유력한 방안으로 대두됐다. 즉 현재 대치 중인 전선에서 '현상 유지'로 영토선 아닌 경계선만 긋고 비무장지대(DMZ)를 설정한 뒤 사실상 종전 성격의 휴전을 하자는 것이다. 과거 평화협정 없이 전투만 멈췄던 남북한은 현재 70년 넘게 기술적으로 전쟁 상태다. 이는 미국의 중재안으로, 미·러·우 3자 종전 협상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
두 당사국은 영토 관련 이견으로 중재안에 부정적이다. 우크라이나는 빼앗긴 영토를 다 수복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러시아는 과거 합병한 크림반도를 육로로 이을 동부 4개 주(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를 온전히 갖길 원한다. 러시아는 현재 대부분 점령한 루한스크를 뺀 나머지 3개 주는 각각 70% 안팎의 영토를 점유했다. 최근 끝난 제3차 종전 협상에서도 양국은 원칙적 입장을 되풀이하며 외형적으론 진전을 보지 못했다.
다만 두 나라 요구는 협상에서 더 이득을 보려는 포석으로 받아들여진다. 현실적으로 두 나라 모두 이 엄청난 소모전을 계속할 여력이 바닥나서다. 양측 군인 사상자만 200만 명에 달할 만큼 병력, 무기, 물자를 무리하게 소모 중이다. 민간인 사망자도 수십만 명에 달할 거란 추정치가 나오고, 주택과 각종 기반 시설 파괴 등 경제적 손실도 천문학적이다. 양측이 하루에 쏟아붓는 포탄 양이 유럽 전체 생산량을 넘어설 정도지만, 전선은 교착 상태에 빠진 지 오래다. 특히 러시아군은 병력 손실이 12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보유 전차 3분의 2가량을 잃었다.
양국은 이제 별 전과도 없이 사람과 물자만 갈아 넣는 이 소모전을 계속하기도, 중도에 하차하기도 난감한 진퇴양난 처지다. 양측을 지원하는 나라들 역시 지쳐가고,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이 크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국내외에 내세울 적절한 명분만 누가 만들어준다면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은 게 솔직한 속내일 수 있다. 이런 국면에서 미국의 '한국식 동결' 중재안이 나온 만큼 현실적으로 이보다 나은 대안을 찾긴 어려워 보인다.
러시아는 과거 크림반도와 돈바스 일부 점령으로 우크라이나 영토 7%를 확보한 데 이어 이번에 13%가량을 더 확장했으니 희생은 컸지만, 실익은 챙겼다. 마리우폴 같은 주요 부동항과 본토에서 크림반도를 잇는 육로도 확보해 전략적 가치도 챙긴 만큼 현상 동결이 나쁘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영토를 적잖이 잃고 유무형 피해도 컸지만, 전쟁을 계속해도 득보다 실이 많으니 매몰 비용을 생각할 때는 아니다. 특히 미국의 무기 지원이 끊기면 전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미국은 6월을 종전 시한으로 잡고 우크라이나가 따르지 않으면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압박 중이다. 러시아를 상대로는 제재 해제 등 유인책을 제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토 양보는 없다"고 연일 외치지만, 명분 쌓기이자 협상용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한국식 동결 모델로 휴전이 이뤄지고 '임시 분계선일 뿐 영토를 조속히 수복하겠다'는 선언으로 국내 여론을 달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독자 전쟁 수행 능력이 없기에 결국 미국 뜻을 거스를 수 없어서다. 영구 평화가 아닌 불완전 봉합이다. 대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국가 안전을 단단히 보장받고, 러시아에 넘어간 자포리자 원전의 공동운영권을 확보하는 등 실익을 챙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그래서 젤렌스키는 한국전쟁 휴전을 앞둔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의 행보를 벤치마킹하려는 듯 보인다. 당시 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미국과 중국이 주도한 휴전에 결사반대하며 북진 통일을 주장했으나 관철하진 못했다. 다만 당시 이승만은 현대 외교사에 길이 남은 '미치광이 전술'로 휴전을 서두르던 미국을 '패닉'에 빠뜨렸다. 혈맹도 모르게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해 '우리 동의 없는 휴전'임을 세계에 환기하고, 휴전 협정 서명도 거부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이승만 제거 작전'까지 계획했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승만이 숨긴 진짜 의도는 어차피 휴전은 못 막으니 그 대가로 영구적 안보 보장을 받으려는 것이었다. 그 결실이 바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덤으로 경제 원조와 군 증강 지원도 받아냈다. 이는 현재 한미 동맹의 근간인 동시에,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이 미국의 우산 속에서 경제 대국으로 기적처럼 변신하게 한 씨앗이 됐다. 젤렌스키가 꿈꾸고 싶은 최고의 미래 청사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