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호 공약’인 상호관세에 대해 20일(현지시간) 연방 대법원이 위법하다고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은 6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 가운데 절반인 3명이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관세가 위법하다는 판단에 가세하면서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강경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을 잇달아 지명했다. 이를 통해 대법원을 극단적 ‘보수 우위’로 재편했고, 대법원은 그동안 논쟁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놓으며 사실상의 법적 ‘지원 사격’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전세계 무역 질서를 뒤흔든 상호관세에 대해선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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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우위’ 대법원, 트럼프 독주 막아섰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이끄는 미 연방 대법원은 이날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에 입각한 상호관세 부과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진보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레나 케이건,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3명의 의견에 로버츠, 닐 고서치, 에이미 코니 배럿 등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이 가세한 6대3으로 판결이었다.
새뮤얼 얼리토, 클라렌스 토마스, 브랫 캐버노 등 보수 성향 대법관이 상호관세가 합법이라는 의견을 냈지만 소수 의견에 그치며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정책의 법적 근거가 사라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날 상호관세를 위법으로 본 고서치, 배럿 대법관은 트럼프 1기 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초강경 보수 성향의 인사다. 이들은 2022년 임신 6개월까지 낙태권을 인정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며 낙태권 존폐에 대한 결정 권한을 주(州)로 넘겼고, 2024년 7월 전직 대통령의 재임 중 공적 행위에 대한 광범위한 면책 특권을 인정하면서 트럼프 재선의 길을 열었다.
보수로 기운 대법원은 트럼프 2기 들어서도 주요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는데 힘을 보탰지만, 상호관세에 대해선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동을 걸며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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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우회한 관세는 권력 찬탈의 구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관세는 의회의 고유 권한”이며 “IEEPA가 대통령에게 주는 수입 규제 권한에 관세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특히 “미국 헌법 제정자들은 평시 관세 부과 권한을 의회 단독으로 부여했다”며 “대통령이 주장하는 권한의 폭, 역사와 헌법적 맥락을 고려하면 이런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선 분명한 의회의 승인을 식별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직접 임명했던 고서치 대법관은 이날 법정에서 이러한 판결에 동의한 배경을 직접 밝혔다.
그는 “국가가 더 많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오늘 결정이 실망스러울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시급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의회를 우회하고 싶은 유혹이 들 수도 있지만, 이러한 숙의적 성격이 이 제도(의회에 관세 부과의 권한을 명시)의 설계 목적”이라며 “이를 통해 국가는 특정 파벌이나 개인이 아닌,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들의 집단적인 지혜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을 임명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과정을 ‘의회를 우회하려는 특정 개인이나 파벌이 유혹에 넘어간 사례’로 규정한 말이다.
대법관들은 더 나아가 판결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비상 권한’은 결국 비상 사태를 야기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러한 비상사태는 결국 의회 권력을 찬탈하기 위한 손쉬운 구실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고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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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근거 없는 음모론…“외국 이익 대변”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직후 백악관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외국의 이익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하며 사법부의 결정에 대해 맹비난을 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스스로 임명한 대법관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매우 실망스럽고, 자신의 결정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며 “그들은 정말 비열한 인간들이고, 국가와 헌법을 위해 옳은 일을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미국을 다시 강하고 건강하고 위대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반대하는 미국에 수치스러운 존재들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관들이 외국의 이익을 대변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대법원이 외국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증거나 조사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그들의 결정을 끔찍했고, 그들의 가족들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면서도 구체적 의견이나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날 상호관세 판결에 동참한 대법관들을 다음주 국정연설에도 초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