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를 20일(현지시간) 위법으로 판단하며 각국이 그 파장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대부분 신중한 태세를 취하며 미국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이어나가겠다는 반응이다. 판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법 122조에 근거, 전 세계 교역국 10%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탓이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올로프 길 유럽연합(EU) 무역대변인은 "(무역에는)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필요하다"며 "판결과 관련한 미국 행정부의 조치들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듣기 위해 긴밀히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영국 역시 "이번 판결이 영국과 타국의 관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협력할 것"이라며 신중 모드를 취했다.
EU는 지난해 7월 미국 측이 주장했던 30%의 상호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대신 6000억 달러(약 868조원)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가 그린란드 야욕을 드러내며 추가 관세로 압박해 곤욕을 치렀다.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 내놓은 10% 관세 부과가 미칠 파장에 주목하는 분위기도 커지고 있다.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경제장관은 "미국 정부가 어떤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지 지켜본 뒤, 그것이 멕시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EU 내에서도 비교적 미국에 강경한 태도를 취해온 프랑스, 미국과 전면에서 갈등을 빚어온 캐나다 등은 미 대법원 판결에 대해 긍정적인 언급을 내놨다. 롤랑 레스퀴르 프랑스 경제장관은 "(상호관세가) 최소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 판결"이라고 말했다. 도미닉 르블랑 캐나다 무역장관은 "이번 판결은 관세가 정당하지 않다는 캐나다 측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역시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에둘러 비판했다. 류펑위 주미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중국과 미국의 경제 및 무역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며 "관세와 무역 전쟁은 어느 쪽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각국의 반응과는 별개로 트럼프 대통령의 권위는 치명타를 입었다는 것이 주요 외신의 분석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 정책에 가해진 치명타이자, 뼈아픈 후퇴"라며 "지난 1년 동안 트럼프의 정책에 힘을 실어줬던 대법원이 이번에는 가장 중대한 좌절을 안겼다"고 분석했다. "사실상 대통령의 외교정책에서 핵심적인 수단을 박탈한 것으로,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던 트럼프의 구상이 동력을 잃게 됐다"는 진단이다.
영국 BBC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적' 이미지에 오점을 남긴 판결"이라며 "미국의 교역국들은 앞으로 미국을 상대로 강경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그럼에도 많은 국가가 트럼프 행정부와 맺은 기존 무역합의를 그대로 이행할 것이란 분석은 계속 나오고 있다. 유럽정책센터(EPC)의 바그 포크먼 애널리스트는 로이터통신에 "지난해 겪었던 관세 불확실성을 다시 겪느니, 기존 합의를 유지하는 편을 선택하는 국가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이날 주요 교역국을 대상으로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새로운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성명에서 "많은 교역 상대국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이며 차별적이고 부담을 주는 정책과 관행 등을 다루기 위해 여러 건의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한국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