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류승완 감독은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취재진을 만나 영화 ‘휴민트’의 제작과 연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휴민트’는 비밀도, 진실도 차가운 얼음 바다에 수장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로, 배우 조인성, 박정민, 박해준, 신세경 등이 출연한다. 지난 11일 개봉해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특히 ‘휴민트’는 북한과 러시아의 접경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인 네 사람의 이야기를 다뤘고, 이 이야기 속에서 그려지는 액션과 멜로의 연출에서 류승완 감독의 무대를 한층 더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OSEN DB.
이날 설 연휴 무대인사 일정을 마치고 취재진을 만난 류승완 감독은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무대인사 분위기도 좋아서 신나게 다녔다. 전에는 무대인사하면 배우들이 객석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이래도 민망해서 앞에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더 힘들더라”고 웃으며, “배우 따라다니면서 인사하니까 배우들을 놓친 분들이 제 손을 잡고 잘봤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물론 그러다가 조인성 씨가 지나가면 제 손을 놓지만, 그래도 참 고맙더라. 무대인사여셔 보셨던, 영화를 보러오셨던 순수한 반응을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버스타면서 배우들이랑 한다”고 말했다.
류승완 감독은 ‘휴민트’를 통해 조인성과 ‘모가디슈’, ‘밀수’에 이어 세 번째 호흡을 맞췄다. 연달아 작품을 공개하며 이제는 영화 동지가 된 조인성에 대해 “키는 많이 큰 것 같다”고 웃었다.
류 감독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오랜시간 스타로 살아서 어려웠는데, 보면서 이 사람은 나이를 잘 먹는구나. 되게 품위있게 시간을 쌓아가는구나 생각이 들고, 현장에서도 에너지를 허투루 쓰지 않는다 느꼈다. ‘모가디슈’, ‘휴민트’ 해외 로케를 몇 달씩 가면 사람이 힘들어지는 순간도 오는데, 이걸 내색을 안 한다. 이번에는 본인이 1롤을 하게 되니까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포용하는 걸 보면서 단순히 배우와 감독의 관계를 떠나서 짐을 덜어주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조인성과 한국 영화에 고민도 많이 나누고 있다는 류 감독은 “요즘에 많이 얘기하는 건 ‘후배들을 어떻게 만들어내지?’다. 젊은 세대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놀이터를 물려줄 수 있을가. 작년부터 영화제 후원해서 다시 하는 것도 똑같다”라며 “코로나 이후에 너무 파편화되어 있어서 제가 기자간담회에서도 어떻게 하면 극장을 관객들의 놀이터로 돌려주지? 이런 얘기를 한다. 그러려면 일단 우리가 하는 거나 잘하자, 우리부터 잘하자. 이제는 정말 좋은 친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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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에서 조인성, 박정민을 필두로 한 액션 장면과 함께 박정민, 신세경의 러브라인인 ‘건선화’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간 멜로물을 찍지 않았던 박정민이 유독 멋있게 나와 큰 화제를 모으고 있기도.
‘휴민트’로 박정민의 재발견이라는 평가가 쏟아지는 가운데, 류 감독은 조인성 대신 박정민에 멜로 모먼트를 선사한 이유에 대해 “조인성 배우가 멜로 서사를 부여받는 것은 너무 그럴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몇년간 조인성 배우와 일을 하면서 이 배우와 저의 최근 성장이 같은 궤를 그리고 있는데, 이 배우가 점점 더 단단하게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이 배우가 뺄셈의 연기를 할 수 있는 내공이 있는 배우가 됐구나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배우도 대본을 받고 자극도 없고, 그런 걸 스스로 알았다. 여기서 전체를 잘 버텨주는 기둥도 아닌 뿌리같은 존재라는 걸 의식하고, 저는 그랬기에 다른 배우들이 잘 보인 것 같았다. 박정민도 아마 본인이 이렇게 멜로 서사에 반응이 강렬하게 올 줄은 몰랐을 거다. 저도 그렇고”라고 전했다.
‘휴민트’를 통해 류승완 감독의 장점이 모두 발휘되는 평가도 있었다. 류 감독은 “매번 모든 영화가 쉬운건 없는 것 같다. 어렵지만 또 다른 재미를 찾으려고 하고, 만드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이 이걸 얼마나 흥미롭게 보는지. ‘휴민트’는 유머가 하나도 없잖아요. 서스펜스를 유지하면서 극을 끌어갈 것이냐, 영화만의 그 개성있는 리듬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이냐”라고 고민을 언급했다.
류승완 감독은 “그리고 ‘베를린’이라는 영화도 만들었으니까, 같은 사람이 만들었는데 뭘 다르게 할 수 있을까. 보다 현란한 기교를 부리기보다, 본질에 충실해서 인물에 집중해서 감정선을 쌓아서 1시간 이후부터는 몰아붙이는 고전적이지만 현대적인 균형을 맞추는 것이 저에게는 큰 숙제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영화는 인물 중심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계성에 집중하고, 연속성을 갖기 위해서 빠른 템포로 편집을 넘기는 것도 재밌지만, 관계를 계속 붙여서 연결 시키는 것이 이것이 쌓이면 관계 밀도가 높아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유머도 없고, 액션도 1시간 뒤에야 나오는 장르 특성상 관객들을 어떻게 2시간 동안 집중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됐다. 류승완 감독은 “그렇기 때문에 배우 캐스팅이 중요했다. 누군가를 바라보게 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을 어떻게 포착하느냐, 어떤 부분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했다). 저는 재미라는 건 되게 여러가지를 담고 있는 부분이어서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흥겨움도 있지만, 경외감을 통해서 얻는 재미도 있고, 긴장을 통해서 얻는 재미도 있고, 어떤 기운을 품고 있는 배우의 상태를 어떻게 보여주느냐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휴민트’ 속 지루함 없이 쏟아지는 액션에도 좋은 리뷰가 이어지는 가운데, 류 감독은 “액션 만들 때 힘들다. 육체적으로 찍어야 하는 분량이 드라마 만드는거랑 다르고, 괴로운게 뭐냐면 위험하니까. 저거 하다가 사람이 다칠까봐 조심스럽고 이렇다. 액션 영화라는 건 여전히 저한테는 가장 순수한 영화적인 형태다”라고 밝혔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 보시면 후반부는 대사 없이 20분동안 나온다. 정말 순수한 소리와 빛으로만 이뤄져서 꾸며내는 게 여전히 판타지다. 그 매력에서 못 벗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호기심이 남아있는 영역이라 그런 것 같다. 누군가 새로운 걸 해내면 나는 왜 저 생각을 못했지? 싶고, 제가 좋아했던 어떤 것도 심취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어서 약간 애같은 심정이 남아있는 영역이라 그런 것 같다”라고 말했다.
초반 액션신에서 박정민이 직접 이를 소화했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앞서 정해인, 조인성 등 많은 배우들이 류승완 감독과 호흡을 맞추면 상상을 초월하는 액션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 그 비법을 묻자, 그는 “쉴새 없는 가스라이팅이다. 이걸 할 수있는 건 너 밖에 없어, 너가 최고야. 본인들도 해내고 놀란다”고 웃었다.
류승완 감독은 촬영을 회상하며 “박정민 배우가 웬만하면 ‘못하겠는데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근데 ‘파수꾼’부터 같이한 조감독한테 ‘도저히 못하겠어요’ 했다고 한다. 근데 최대한 모니터 거리를 둬서 못알아듣게 하고 (웃음). 준비하는 동안 그냥 있다가 현장에 가는 게 아니다. 테스트 기간이 있고, 배우들도 저랑 일한다고 하면 체육에 가까운 운동을 하고 온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서 배우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조인성 배우도 무릎 연골 수술을 하고 그 액션을 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류승완 감독이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한다고. 류 감독은 “이게 몸을 써서하는 게 어렵잖아요. 제가 그렇다고 엄청 위험한 걸 하는 건 아니고, 뭘 하면 저같은 사람도 하니까 안전하구나. 대신 한번 해보기도 하는 거다”며 “특히 스태프들이 장시간 촬영을 하거나, 어려운 액션장면을 같은 공간, 같은 조명 컨디션으로 찍으면 지친다. 그럴때 약간 이벤트성으로 쿵 쓰러지면, 감독이 얄미워 죽겠는데 쟤가 직접 넘어지네 이런 현장에서 작은 이벤트가 될수도 있으니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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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가 연기를 한다기보다 심리적인 안도감, 우리 지금 세팅이 안정됐고, 안전장치가 다 되어있어. 스턴트나 연출부가 해야되는 거라면 제가 한번 간단하게 하고 힘든 현장이니까 웃어보고 넘어가자 그런 거였다”고 덧붙였다.
류승완에 대한 높은 기대치가 부담스럽지 않냐는 물음에 “낮은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은 류 감독은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건 재능이라기 보다 계속되는 비판적인 시선들, 건강한 비판들. 저도 이제 비난과 비판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그게 저한테는 도움이 많이 됐다. 세상에 어떤 세계 챔피언도 한대도 안맞고 챔피언이 되는 경우는 없다. 펀치훈련만큼 맷집 훈련을 해야 올라간다. 저는 저한테 설령 높은 기대치가 있다면, 진짜 감사해야되는 게 맞는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특히 반복되는 액션물에서 비슷한 연출 이미지를 주는 점도 고민이 많다고. 류승완 감독은 “지금 저한테는 그게 되게 큰 숙제다. 영화를 만드는 인생을 꽤 살았고, 영화도 열 몇편을 만들었다. 이 안에서 제가 지금까지 어떤 원작을 갖고 만든적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것도 있으니까 스스로 조심하려고 한다. 근데 어쩔 수 없이 이 방법 밖에 없는 순간도 있다”고 밝혔다.
류 감독은 “임권택 감독님이 ‘도리가 없다’는 표현을 쓰신 적이 있는데, 그럴 때 로워지지 못할거라면 어떻게 더 다르게 할 것인가. 확장을 시키거나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법, ‘짝패’에서 머리 잡히는 걸, ‘휴민트’에서 똑같이 한다면 어떻게 한다면 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것이냐”라며 “좀 더 단순하게, 뭔가 깔롱부리지말자. 끼부리지 말고 젊은 척, 되게 유행에 첨단인 척하는 것보다 제가 조금 사람이나 세상을 보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들어가려면 그만큼 다르게 겉핥기 하는걸 덜어내야하는 것 같다. 제 방향성은 그렇다. 너무 복잡하지 않게, 복잡하되 너무 단면적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일부러 오리지널 각본을 고집한 것이냐는 물음에 류승완 감독은 “제가 하고 싶은 건 다 누가 하고 있다. 그래서 누가 하네. 오리지널 각본만 하려는건 아니다. 하고 싶은건 다 누가 한다. 그럴 때마다 ‘보는 눈은 있어서’ 하고 만다”고 웃음을 보였다.
류승완 감독은 지루함 없이 몰아치는 편집 감각이 천부적인 재능이냐는 물음에 “천부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각본을 쓸 때, 스토리 보드를 만들 때, 편집할 때, 녹음하면서도 고민하고 바쁘다. 장면 전환을 하는 순간이 영화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전환해야 관객들이 특히 대쇼츠시대에 관객들과 2시간 동안 팽팽한 밀고당기기를 하면서 갈 수 있을까”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류 감독은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제 방식을 돌이켜보면 저를 괴롭히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이제 보면 성에 안차는 부분이 나온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저를 못믿는거다. 그거 말고는 답이 없다”라고 했다.
이로 인해 주변에 조언을 구한다는 류승완 감독은 “혼자서 하는건 너무 힘들다. 그럼 제 판단 오류에 빠질 수가 있어서, 주위사람들을 계속 괴롭힌다. 현장 스태프도 제 자식 또래가 있다. 이 친구들과도 물어보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계속 괴롭힌다”라고 덧붙였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커질 수록 관객들과 잘 만나고 싶다는 목표도 커질 것. 특히 최근 개봉하는 영화의 경우 초반 관객평이 흥행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 오기가 생기지는 않냐는 물음에 류승완 감독은 “오기 이런 건 없어진지 오래다. 오기 부릴 나이가 아니다”라고 웃었다.
류 감독은 “무대인사하는데 기분이 좋더라. 극장에 되게 간만에 북적북적한 느낌이고, 로비에 사람이 많고, 가족 단위 관객이 온게 얼마만이지 해서. 시대의 흐름이 바뀌는 건 어쩌겠어요. 이걸 가지고 잘되네, 못되네 탓할 수만은 없고, 극장이 목욕탕이랑 비슷한 것 같다”고 비유했다.
그는 “이제는 집에서 다 샤워하니까, ‘왜 목욕탕을 가?’ 한다. 근데 목욕탕에서 바나나우유 먹은 사람은 다 그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더 좋은 무언가가 필요하다. 찜찔방이 좋거나, 맥반석 계란 말고 다른게 있거나. 영화도 그런 것 같다. 시대의 흐름은 어쩔수없는 것 같고, 그렇게라도 관심을 가져주시는게 감사하다. 어쨌든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니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