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위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의 약 60조원 규모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가 가상자산 규제 체계 재편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빗썸 관련 정식검사를 이달 말까지 연장하며 책임 규명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국회와 정부가 추진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가상자산 2단계 입법)에도 보다 강도 높은 규율이 담길 것이란 전망이다.
20일 금융당국 및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팀(TF)은 오는 24일 법안 내용에 대한 자문위원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향후 입법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정문 TF위원장은 TF단독 발의와 정부와의 공동안 모두 열어두고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가상자산을 금융 인프라로 규정하며 지분율 제한과 무과실 책임 등 강한 규제를 요구해왔고, 민주당 TF는 산업 성장 가능성을 고려해 단계적 규제 도입에 무게를 둬왔다. 그러나 빗썸 사태 이후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조속한 입법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거래소 구조를 금융회사 수준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빗썸 사태 이후 규제 강화 시나리오는 크게 네 갈래다. 첫째는 ‘무과실 책임’ 도입이다. 현재는 해킹이나 전산 장애 등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 구조가 약관과 민사 판단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이용자가 과실 여부를 둘러싼 분쟁 부담을 지는 구조였다. 금융당국은 전산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자가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업계의 부담 우려로 진척이 더뎠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업비트 해킹 사고에 이어 올해 빗썸 사태까지 겹치면서,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책임 규정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금융당국의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기자본 요건 상향과 이용자 자산 보호 강화 방안에도 속도가 붙는 분위기다. 그동안 발행인의 초기 자본요건은 5억원에서 250억원까지 다양한 안이 제시됐다. 특히 금융당국은 자본 요건이 낮으면 사고 발생 시 손실 흡수 능력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기자본 요건을 높이고 이용자 자산 분리보관 규정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재점화하는 모양새다. 또 주기적인 가상자산 보유 현황 점검 의무와 함께 원장과 지갑 간 잔고를 상시 대조하는 체계 도입도 추진된다. 이와 함께 개발·운영 분리, 다중서명, 대량 이체 지연시간(쿨링타임) 등 금융회사 수준의 전산 통제 규정 도입 가능성도 제기된다.
가장 큰 쟁점은 대주주 지분 제한 문제다.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15~20%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자본시장법상 대체거래소(ATS)의 ‘15% 룰’을 바탕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업계는 "지분을 강제 매각하라는 것이냐"며 반발이 컸다. 야당에서도 “사고와 지분율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지 의문(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과거 경영진을 둘러싼 각종 논란까지 다시 언급되면서 대주주 규제 필요성이 논쟁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규제가 대폭 강화된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이 추진될 경우 업계 구조 변화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자기자본 요건 상승과 인가 규제 강화로 중소 거래소의 퇴출 가능성이 거론되는 반면, 제도권 금융 수준의 규율 도입으로 산업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가상자산 시장을 단순 투자 플랫폼이 아니라 금융 인프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재발 방지를 위한 규제 강화와 산업 경쟁력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정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빗썸 사태는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으로, 문제의식에는 크게 공감한다”면서도 “지분율 제한만으로는 이번 사안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이어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은 인허가 단계에서 라이선스를 보다 엄격히 부여하고, 내부통제 체계를 정비하는 한편, 금융당국의 상시 모니터링 등 감독 기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