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만은 전장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대파했던 그곳, 조선(造船) 한국의 전설이 쓰인 그곳에서 밥과 법이 대치했다.
공중은 아슬아슬했다. 여섯 사내가 13m 높이의 미완성 구조물 난간에 자리해 초췌한 모습으로 쉼 없이 ‘팔뚝질’을 하며 구호를 외쳤다.
지상은 처절했다. 기지개조차 불가능한 1㎥의 현대판 철제 뒤주 속에 한 사람이 자신을 감금하고 있었다. 방송 카메라가 그의 얼굴을 지나 손 부분을 훑었을 때 아찔한 피사체가 포착됐다. 시너 통이었다.
그 대우조선해양 조선하청지회 소속 하청 노동자들의 핵심 요구는 코로나 19 기간 크게 줄어든 급여를 원상 복구해달라는 것이었다. 원청·하청의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신음하던 그 피라미드 최하단의 노동자들에게 ‘옥쇄 투쟁’은 최후의 보루였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 즉 옥포조선소 1번 독(dock)의 30만t급 원유운반선 건조 현장 점거는 명백한 불법이었다. 게다가 몇달 전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녹록하지 않았다. “공권력을 투입할 수 있다”는 겁박이 빈말로 들리지 않았다. 2022년 7월 19일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다. (이하 경칭 생략)
"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생각합니다. "
윤석열은 7월 19일 출근길에 공개적으로 최후통첩한 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구체적 ‘결단’의 내용을 전달했다. 화들짝 놀란 이상민은 급히 전화기를 집었다.
" 의원님, 저 이상민입니다. 큰일 났어요! 대통령께서 경찰 특공대를 투입하라고 지시하셨어요. 본때를 보여주랍니다. 어떻게 하죠? "
그 ‘의원님’은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핵심 실세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그가 반문했다.
" 그걸 왜 저한테 말씀하십니까? "
이상민이 전화기 너머에서 고개를 숙였다.
" 대통령께서 장 의원님 말은 듣지 않습니까? 제발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
아닌 게 아니라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상민과 장제원의 뇌리에 ‘용산 참사’가 떠올랐다. 2009년 경찰 강경 진압 과정에서 시너 통에 불이 붙는 바람에 농성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한 그 비극 말이다. 장제원은 대통령을 달랬다.
" 대통령님, 한 번만 참으십시오. 섣불리 경찰 투입했다가는 큰일 날 수 있습니다. "
완강했던 윤석열의 기세가 조금씩 꺾이기 시작한 건 자정 무렵이었다.
" 내가 한번 생각해볼게. "
그가 다시 전화를 걸어온 건 다음 날 새벽 4시였다.
" 내가 이번에는 장 의원 말을 듣기로 했어. "
그렇게 해서 경찰특공대 투입은 없던 일이 됐고, ‘옥포 참사’는 현실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석열은 그 결단의 번복이 내심 마뜩잖았던 모양이다. 장제원은 생전 한 언론사 간부에게 그로부터 얼마 뒤 열린 한 술자리 이야기를 꺼냈다.
" 정부 출범 초기 대우조선 사태를 비롯한 진보, 좌파 세력의 반발이 컸어요. 대통령이 그걸 언급하면서 그들을 비난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술에 취했는지 ‘난 퇴임 후를 걱정해서 할 걸 못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목소리를 높이더군요. 그때부터 말이 점점 더 거칠어지기 시작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