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한국시간)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1500m 경기를 2위로 마친 최민정(28·성남시청)은 울고, 또 울었다. 금메달을 딴 후배 김길리(22)를 축하하면서도, 시상대에 오를 때도, 인터뷰를 할 때도 눈시울을 붉혔다. 중앙일보와 만난 최민정은 "몇 번 울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무표정하게 빙판 위를 질주해 '얼음 공주'라 불리던 최민정이다. 그런 그에게도 마지막 올림픽은 특별한 순간이었다. '잠들기 전 무슨 생각이 들었냐'는 질문엔 "'이렇게 후련할 수가 있나'라고 생각했죠"라고 답했다. 그는 "이번 시즌 준비를 하면서부터 (은퇴를)생각했어요. 무릎과 발목도 좋지 않고… 정신적으로도 지쳤어요. 사실 이제 더 할 것도 없어요"라고 웃었다.
최민정은 2022 베이징 올림픽을 치르고 1년 동안 휴식기를 가지기도 했다. '완전한 끝'은 아니다. "김연경 선수처럼 대표팀에선 떠나지만 소속 팀에서 뛰면서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동료들은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란 사실을 몰랐다. 다들 놀랐고, 김길리는 눈물을 보였다. 대표팀 맏언니 이소연(33)은 대한체육회 기자회견에서 "더 해도 될 것 같은데"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했다. '빵' 터진 최민정은 "너무 웃겼어요. 사실 언니뿐 아니라 (김)길리도 그렇고, 다들 '더 하라'고 하는데 그만 해야죠"라고 선을 그었다. "생각이 또 바뀔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그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마무리는 없는 것 같아요."
최민정은 이번 대회 주장을 맡았다. 그래서 팀을 위해 헌신하려고 노력했다. 1번 주자인 그는 스타트 연습에 매진했다. 심석희는 "개인전까지 준비하느라 많이 바쁠텐데 계주를 개인전보다 더 많이 생각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주장으로서 책임감이 무거워 부담스럽고 힘들었을텐데 그런 부분까지 노력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2018 평창 올림픽에서 2관왕(1500m·3000m 계주)에 오른 최민정은 4년 뒤 베이징에서 금메달 1개(1500m), 은메달 2개(1000m·3000m 계주)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선 계주 금메달과 함께 1500m 은메달을 따냈다. 총 7개의 올림픽 메달로 대한민국 최다 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는 "GOAT(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의 선수)요? 그런 평가는 제가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판단해 주실 것 같아요"라고 몸을 낮췄다.
전라북도는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만약 한국에서 다시 올림픽이 열린다면 최민정이 성화 최종주자가 될 수도 있다. 그는 "스포츠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뭐든 해야죠. 영광스러울 것 같아요"라고 했다.
밀라노로 떠나기 전 최민정은 어머니 이재순 씨에게 편지를 받았다. "6살 때 스케이트를 처음 신던 작은 아이가 이렇게 큰 무대에 서다니 기적 같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해진다. 남들 눈에는 국가대표, 올림픽 선수지만 엄마 눈에는 아프면 아프다고 말 못 하고 힘들어도 참고 웃던 내 딸. 성적보다 네가 여기까지 온 시간 자체가 금메달"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읜 최민정에게 엄마와 언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최민정은 "엄마 편지가 큰 힘이 됐어요. 답장은 쓰지 않을 것 같아요. 금메달과 은메달이 답장 아닐까요"라고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인터뷰를 마친 최민정은 손에 파스타를 꼭 쥐고 있었다. 2026개만 제작한 한정판 파스타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를 즐겨보는 그는 "선물로 받은 파스타와 트러플 같은 좋은 이탈리아 식재료를 사 가서 셰프들에게 요리를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는 "평소보다는 책을 많이 읽지 못했어요"라고 했다. 그만큼 이번 대회를 열심히 준비했다. '쇼코의 미소(최은영)', '건너가는 자(최진석)', '마지막 몰입 : 나를 넘어서는 힘(존 퀵)'을 읽으며 힘을 냈다고 했다.
평창 올림픽을 2년 앞둔 2016년, 쇼트트랙 대표팀 훈련을 취재하며 처음 최민정을 보았다. '악바리'란 단어가 떠올랐다. 뿔테 안경을 쓴 작은 체구의 소녀가 모든 훈련을 마지막까지 했다. 사실 최민정이라고 좋아서 한 건 아니었나 보다. '이젠 뭘 할 거냐'고 물으니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싶다"며 웃었다.
10년 전 그에게 던졌던 마지막 질문이 생각난다.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요."
"'쇼트트랙' 하면 '최민정'이 떠오르게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