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있다면, 남아시아에는 ‘다카국제영화제’가 있다. 지난달 18일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 열린 ‘제24회 다카국제영화제’에서 대해 스님의 장편 영화 ‘인간 초거대 알고리즘(A vast human algorithm)’이 영성 영화(Spiritual films) 부문에서 ‘최우수 극영화상(Best fiction film)’을 수상했다. 트로피를 안고 방글라데시에서 귀국한 대해 스님(67)을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Q : 궁금하다. 출가한 스님께서 왜 영화를 제작하나.
A :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수행은 안 하고 왜 영화를 만드느냐고. 그런데 수행을 통해 깨달으면, 그다음에 뭘 해야 하나. 사람들이 잘살아갈 수 있도록 일러줘야 하지 않나. 그래서 먹고 살게 해야 한다. 그런 깨달음의 이치를 영화로 만들면 어떻겠나.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가 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다. 이번 영화는 경상북도와 경산시에서 제작 예산 지원도 받았다.”
Q : 이 영화를 본 관객이 무엇을 깨치길 기대하나.
A : “인간의 내면은 형체가 없어서 안 보인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자기 안에 있는데도, 꺼내서 쓸 줄을 모른다. 이 영화는 ‘꺼내 쓰는 법’을 일러준다. 그걸 깨치면 좋겠다.”
Q : 무엇을 꺼내 쓰는 건가.
A :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거대한 힘이다. 그런데 이 힘은 형체가 없다. 그게 중요하다. 그래서 무형의 힘을 눈에 보이는 108가지로 분류했다. 다시 말해 무형의 본질을 유형의 알고리즘으로 만든 셈이다. 그걸 영화에서는 ‘108 법왕자’로 표현됐다. 상속을 둘러싼 복잡한 법적 소송을 거치면서 힘겨워하던 여주인공 도아가 자기 내면의 ‘108 법왕자’를 만나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이야기다.”
Q : 108 법왕자,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달라.
A : “예를 들어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동생은 어릴 적에 외국으로 입양갔다. 형은 나중에 외국 유학을 갔다. 우연히도 둘은 같은 대학에 다녔다. 쌍둥이인 줄 모르고 서로 싸우는 일이 생겼다. 싸우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서로에게 물어보니 아버지 이름도 같고, 출신지도 같았다. 형이 집에 가서 물어봤더니 입양 간 동생이 있다고 했다. 그다음부터 둘은 싸우지 않았다. 왜 그랬겠나.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걸 아니까. 그걸 ‘불이성(不二性)’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쌍둥이만 그런 게 아니다.”
Q : 쌍둥이만 그런 게 아니라면.
A : “우리 모두가 그렇다. 인간의 본질, 인간의 뿌리, 인간의 내면세계는 하나다. 서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108 법왕자’ 가운데 하나가 ‘불이성’이다. 사람은 대부분 서로 부딪히고, 질투하고, 충돌하면서 살아간다. 그로 인해 힘들어한다. 그런데 너와 나의 본질이 다르지 않음을 알면 어찌 되겠나. 불이성을 깨치면 어찌 되겠나. 쌍둥이 형제처럼 사이좋게 살아간다. 그럼 삶이 평온해진다. 불이성 외에도 완전성ㆍ구족성ㆍ무한창조성 등 우리의 내면에는 거대한 힘이 있다. 그걸 써먹자는 거다.”
대해 스님은 지금껏 121편의 영화를 각본ㆍ감독했다. 국제영화제 수상 경력만 95회다. 2017년 감독한 장편영화 ‘산상수훈’은 모스크바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아 감독상과 촬영상 등을 수상했다. 올해 상반기에 개봉할 계획인 영화 ‘인간 초거대 알고리즘’은 미국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도 은상을 수상했다. 휴스턴 국제영화제는 북미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독립영화제다.
Q : 다카국제영화제, 현지의 반응은 어땠나. 스님이 감독한 영화라 특이하게 봤지 싶다.
A : “스님 감독이라 가사 장삼을 입으니까 다들 좋아하더라. 영화는 영성적인 것과 테크(기술)적인 것을 연결해 놓은 게 놀랍다고 했다. 영화 제목에 대한 호평도 무척 많았다. 아, 그리고 카메라 워킹에 대한 칭찬도 많았다.”
‘인간 초거대 알고리즘’의 촬영은 유억 감독이 맡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악연’과 황정민ㆍ이정재 주연의 ‘신세계’에서도 촬영을 맡은 실력파다. 배역은 박서령ㆍ정성욱ㆍ백서빈 배우 등이 맡았다.
Q : 통도사 서운암과 부석사 등 한국 전통사찰의 아름다움이 영화 곳곳에 배어 있다. 이유가 있나.
A : “우리의 고유한 한국의 미(美)를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여주인공이 108 법왕자를 만나는 장소도 경주 월지(月池)로 정했다. 월지는밤 풍경이 수려하다. 주인공이 사는 집도 한옥이다. 경주는 경찰서도 한옥으로 돼 있다. 그런 것까지 일일이 영화에 담았다.”
Q : 차기작은 어떤 영화인가.
A : “제목은 ‘소크라테스의 환생’이다. 장편 영화다. 철학과 대학생들이 소크라테스 사상의 본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무엇이 우리의 영혼을 훌륭하게 만드는가. 소크라테스가 던진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번 달에 크랭크인(촬영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