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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경고에도…"승리는 우리의 것" 현수막 건 러시아 대사관

중앙일보

2026.02.21 22:54 2026.02.22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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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4주년을 앞두고 주한 러시아 대사관이 건물 외벽에 전쟁 승리를 장담하는 듯한 내용의 대형 현수막을 내걸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자진 철거를 요구했으나 러시아 측은 응하지 않고 있다.

22일 복수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대사관은 서울 중구 정동 소재 대사관 건물 외벽에 러시아 삼색기를 배경으로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Победа будет за нами)”란 문구를 러시아어로 적은 현수막을 설치했다. 이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의 승전 구호였으나 최근 러시아 내에서 자신들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옹호하는 구호로 다시 등장했다. 외교가에선 주재국 수도에 있는 외교 공관에 이런 선전물이 내걸린 것은 상호 존중이란 외교적 관례를 벗어난 이례적 일이란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4주년을 이틀 앞둔 22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 대사관 건물 벽에 러시아어로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Победа будет за нами)'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외교부는 이런 사실을 확인한 뒤 곧장 러시아 대사관 측에 현수막 철거를 요구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명백한 유엔헌장·국제법 위반’이란 기존 정부 입장에 따라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한 소식통은 “외교부가 해당 현수막이 불필요한 오해와 외교적 긴장을 조성할 수 있으니 철거해달라고 요구했다”며 “한국에 주재하는 다른 유럽 국가 사절들도 해당 현수막에 대한 불쾌감을 우리 정부로 여럿 전달해 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러시아 대사관은 우리 정부 요구에도 요지부동인 상황이다. 대사관 측은 “과거 소련 시절부터 써온 관용구로, 우크라이나 전쟁과는 무관하다”며 정치적 의도를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차원에서 해당 현수막을 강제로 철거할 방법은 없다. “주재국 관리는 공관장의 동의 없이는 공관의 지역에 들어가지 못한다”(22조 1항)는 비엔나 협약에 따라 외교 공관은 불가침권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오른쪽) 주한 러시아 대사와 블라디슬라프 소로킨 3등 서기관이 지난 11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열린 ‘러시아 외교관의 날(2월 10일)’ 기념 비공식 행사에서 말하고 있다. 한지혜 기자

문제는 러시아 대사관이 공개적으로 러-우 전쟁 지지 관련 행보를 계속 이어가고 있단 점이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는 지난 11일 대사관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의 위대함을 잊지 않겠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또 대사관 측은 우크라이나 침공 4주년인 24일에도 러-우 전쟁 지지 집회를 주최할 계획이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지난해 침공 3주년 당시에도 대사관 인근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날은) 단극 시대가 끝나고, 공정한 민주적인 다극 국제 질서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대사관 측의 잇따른 논란성 행보가 한국 정부를 겨냥한 러시아 정부의 의도된 견제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현직 대사가 주재국을 상대로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본부의 훈령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며 “북한과의 전방위 밀착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신호이자 한·미 협력에 대한 경고로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관계자는 22일 “우리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불법행위이며,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협력은 유엔 헌장 및 안보리 결의의 명백한 위반이자 우리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인 만큼 중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며 “향후 예정된 주한 러시아 대사관 측의 집회 등과 관련해서도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윤지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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