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창영 2차 종합 특별검사가 본격적인 수사를 개시하기도 전에 난관에 봉착했다. 2차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등이 12·3 비상계엄을 장기간 사전 준비했다는 전제로 출범했는데, 지난 19일 지귀연 재판부가 계엄 결심 시점을 선포하기 불과 이틀 전으로 특정하고 ‘노상원 수첩’의 증거능력을 배척했기 때문이다.
━
“계엄 1년 전부터 계획?…이틀 전 결심한 듯”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 지귀연)는 지난 19일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1133쪽 분량 판결문에 “검사는 윤석열이 약 1년 전부터 국회를 제압해 장기독재를 하려는 의도를 갖고 내외적 여건을 조성하다가 여의치 않자 이 사건 비상계엄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나 장기간 준비해 계엄을 선포했다고 보기에는 준비가 지나치게 허술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국민담화 및 포고령 내용, 각종 진술을 종합하면 적어도 12월 1일 무렵 ‘더는 참을 수 없다.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이 사건 실체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여의도 봉쇄’ ‘수거팀 구성’ 등 문구가 기재된 ‘계엄 책사’ 노상원 전 사령관의 수첩이 계엄 선포 1년 전인 2023년 10월 이전에 작성됐다는 주장도 “막연하고 추상적”이라며 배척했다. 공소유지를 해 온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수첩에 기재된 ‘박안수’ ‘여인형’이 2023년 10월쯤 장군 인사에서 육군참모총장과 국군방첩사령관에 임명된 점을 감안할 때 수첩이 이전에 작성됐고, 노 전 사령관은 군 인사에 개입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비슷한 시점에) 곽종근, 이진우도 육군특수전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으로 보직됐는데 이들에 대해 아무런 기재가 없는 점에 관해선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동안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보좌해 수거대상 처리, 부정선거 수사 등 구체적인 계엄 실행 계획을 수립한 ‘비선 핵심’으로 지목됐다. 수첩에는 “헌법 개정(재선~3선)” 등 계엄 성공 이후의 구상을 적은 것으로 의심되는 문구나 “NLL(북방한계선) 인근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 등 수거대상으로 체포한 정치인의 처리 계획을 기획한 흔적도 나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노 전 사령관과 계엄의 연관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노상원 수첩이 계엄 해제 후인 2024년 12월 15일 노 전 사령관 모친 주거지의 책상 위에서 발견된 점을 들어 “노 전 사령관이 2023년 10월 이전부터 계엄을 계획했다면, 이 수첩은 결정적인 증거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수사기관이 발견하기 쉬운 주거지 책상 위에 그대로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수첩 모양, 형상, 필기 형태, 내용 등이 조악한 데다가 보관한 장소 및 보관 방법 등에 비춰보더라도 중요한 사항이 담긴 수첩이라 보기에 무리가 있다”며 “작성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고, 일부 내용들은 실제 이루어진 사실과 불일치하는 부분도 있다”고 판단했다.
━
“계엄 계획 치밀했다” 증거 다시 찾아야
이런 판단은 2차 종합특검 수사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직 정식 수사를 개시하지 못한 2차 종합특검은 기존 3대 특검(김건희·내란·순직해병)이 끝맺지 못한 수사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중에는 윤 전 대통령과 관련자들이 계엄 명분을 얻기 위해 무장한 아파치 헬기를 NLL 인근에서 위협 비행하게 했다는 외환 의혹, 그리고 노상원 수첩에 기재된 내용의 구체적 기획·준비까지 나아갔다는 의혹이 있다. 두 의혹 모두 계엄이 장기간 치밀하게 계획됐다는 기존 내란 특검 수사의 전제가 인정돼야 수사가 원활히 진전될 수 있다. 하지만 지귀연 재판부가 판단을 달리 한 것이다.
2차 종합특검은 이런 판단을 뒤집기 위해 현재 특검법상 거론된 수사 대상 외에도 계엄이 장기간·치밀하게 계획됐고, 노 전 사령관은 계엄 핵심 기획자라는 결정적인 증거 내지 증언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 노 전 사령관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그동안 수사나 재판에서 진술을 거부하는 등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이다. 또 내란 특검이 지난해 6개월간 고강도 수사를 한 만큼, 포착되지 못한 새로운 증거가 있을 가능성은 작다는 예상도 나온다.
특히 노 전 사령관은 수첩 속 ‘강은 차후’ 문구가 강호필 전 육군 지상작전사령관은 2023년 10월이 아닌 이듬해 4월 대장으로 승진한다는 내용으로 의심되나 “내 고향인 충남 서천 옆 금강에 차후 매운탕 먹으러 가겠단 뜻”이라고 설명하는 등 문맥에 맞지 않는 진술을 했다고 전해져 2차 종합특검 수사에서도 유의미한 진술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윤 전 대통령 등 소환이 원활히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윤 전 대통령 측은 무기징역 선고 후 “수사와 특검, 2차 특검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숙청하려 하는 것인가”라며 2차 특검에 날 선 입장을 냈다.
권창영 특검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지귀연 재판부 판결은 내가 평가할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