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고 ‘최애(가장 좋아하는)’ 음식까지 먹으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인데요, 하하.”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빅에어에서 깜짝 동메달을 거머쥔 유승은(18)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지난 21일 장거리 비행을 거쳐 귀국하자마자 곧장 중앙일보와 마주한 장소는 서울 상암동의 김치찌개 식당. 김치찌개를 ‘소울 푸드’라 소개한 그는 숟가락을 뜰 때마다 “음, 바로 이 맛”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어 “올림픽 내내 국물이 그리웠다. 귀국하면 첫 끼는 무조건 김치찌개로 할 생각이었는데 소원을 풀었다”며 2인분을 게눈 감추듯 비워냈다.
당초 유승은을 메달 후보로 분류한 전문가는 드물었다. 준비 기간 중 발목과 손목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여러 차례 당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도 손목과 발목 뼈를 고정하는 핀을 삽입한 채 출전했다. 뼈가 온전히 붙지 않은 상태라 부상 부위에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통증이 찾아왔지만, 그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유승은은 “너무 자주 다쳐 여러 번 스노보드를 관두려 했다. 매번 부모님을 생각하며 버텼는데, 올림픽 메달로 보상받았다”고 했다.
주 종목인 빅에어의 상승세를 발판 삼아 슬로프스타일에도 나섰으나 12위에 그쳤다. 예선에서 3위에 올라 기대감을 띄웠지만, 악천후로 인해 경기 일정이 미뤄지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탓에 준비한 걸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유승은은 “기상 악화로 결선이 취소돼 예선 순위를 최종 결과로 인정하는 상황을 잠깐 머릿속에 그려보긴 했다”면서도 “하지만 힘들게 준비한 선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마음에서 얼른 지웠다”고 털어놓았다.
다음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묻는 질문에는 의외의 대답을 들려줬다. 유승은은 “메달을 따고 엄마한테 꺼낸 첫마디가 ‘이제 우리 집 빚 갚자’였다”면서 “훈련 비용을 충당할 만큼의 후원을 받지 못하면 스노보드를 접고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어릴 땐 잘 몰랐는데, 스노보드 선수로 활동하기 위해선 돈이 많이 든다”고 언급한 그는 “내가 좋아하는 걸 고집하기 위해 아빠, 엄마가 고생하시는 모습을 계속 볼 순 없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국가대표급 스노보드 선수가 훈련 및 국제대회를 소화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간 1억원을 상회한다. 오랜 기간 부상에 시달린 유승은은 최근에야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 스폰서십 확보가 여의치 않았다. 현재 후원사는 롯데 한 곳뿐인데, 활동 비용을 메우기엔 모자란다. 그 때문에 어머니 이희정씨가 스키용품 아웃렛에서 50% 이상 할인받아 구매한 50만원대 보급형 보드를 갖고 올림픽에 출전했다.
유승은은 “올림픽 현장에서 일반인용 보드로 훈련하는 내 모습을 본 스노보드 브랜드 미국 본사 관계자가 깜짝 놀라더라”면서 “그 자리에서 선수용 보드로 바꿔줬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내 꿈은 올림픽 금메달”이라고 강조했다.
유승은은 우선 휴식을 취하며 느긋하게 다음을 그려나갈 예정이다. “난 MZ세대지만 입맛은 아재(아저씨)에 가깝다. 감자탕, 국밥 등 올림픽 기간 중 먹고 싶던 음식들을 차례대로 즐길 생각에 신이 난다”며 활짝 웃는 그의 표정과 미소는 영락없는 열여덟 여고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