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 앞에서 만난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2관왕 김길리(22)는 동메달까지 메달 3개를 목에 걸고 등장했다. “정말 무겁다”며 활짝 웃는 그에게 그의 별명 ‘람보르길리’에서 착안한 람보르기니 미니카를 선물하자 또 한 번의 사랑스러운 눈웃음이 돌아왔다.
하루 전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에서 그는 별명처럼 수퍼카 같은 질주를 보여줬다. 마지막 세 바퀴를 남기고 대표팀 동료 최민정(28)과 함께 나란히 1·2위로 올라선 뒤 엄청난 가속으로 최민정마저 제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시상식은 새로운 여제의 대관식 같았다. 스노보드 최가온이 롤모델 클로이 김(미국)을 넘어섰듯, 김길리가 ‘여제’ 최민정의 왕관을 물려받는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올림픽 기간 중 김길리는 부친 김선호씨와 수시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지난 18일 여자 3000m 계주에서 첫 금메달을 따낸 뒤 ‘장하다 우리 딸’이라는 아빠의 메시지에 그는 “꺄아아악~ 미쳐따요(감탄하는 신조어)”라며 발랄한 답장을 보냈다. 16일 여자 1000m 동메달 직후엔 아빠의 격려에 “예썰. 굿굿”이라고 화답했다. 20일 여자 1500m 우승 땐 “감사합니다 ㅠㅠㅠㅠ”라며 꼭꼭 숨겨둔 감정을 살짝 드러냈다. 당일 최민정의 은퇴 발표 소식을 접한 그는 취재진에 “진짜요
?”라고 반문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밀라노에서 만난 김선호씨는 “길리가 어린 시절부터 최민정을 롤모델로 삼아 훈련에 매진했다. 우상이 태극마크를 내려놓는다는 소식에 많이 슬퍼했다”고 귀띔했다.
김길리는 대회 초반 가슴 철렁한 상황을 겪었다. 10일 혼성계주 2000m 레이스 도중 미끄러진 코린 스토더드(미국)와 충돌해 넘어지며 펜스에 강하게 부딪쳤다. 부상은 없었지만 컨디션이 가라앉았다. 부친 김씨는 “길리가 이후 출전한 500m에서 속도가 안 나와 힘들어했다. 소속팀(성남시청)에서 급히 다른 종류의 날을 공수해 바꿔 끼우고 나머지 종목을 소화했다”고 말했다.
두 차례 우승 장면에서 김길리는 양손 엄지와 검지, 새끼손가락을 함께 펴는 시그니처 동작을 선보였다. 그가 응원하는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간판 스타 김도영의 세리머니와 닮았다. 앞서 KIA 홈경기 시구자로도 나선 그는 귀국 후 팬들과 KIA 경기를 보러 가는 게 꿈이다.
한편 대한민국 선수단은 2관왕 김길리의 활약을 앞세워 당초 목표로 정한 금메달 수(3개)를 채웠다. 은메달과 동메달도 각각 4개와 3개를 보태 4년 전 베이징 대회 성적(금2·은5·동3)을 뛰어넘었다. 최가온, 유승은(이상 스노보드), 임종언(쇼트트랙) 등 겨울 스포츠의 미래를 이끌 10대 선수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김길리는 22일 현지에서 열린 해단식에서 대한민국 선수단 MVP로 선정됐다. 현지 취재 기자단 투표에서 80%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