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형 당뇨' 판정을 받은 자식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범법자가 됐지만, 결국 제도 변화를 끌어낸 엄마가 있다. 지난달 개봉한 배우 최지우 주연 영화 '슈가(설탕)'의 실제 주인공인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의 이야기다.
김 대표는 2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영화는 순한 맛"이라며 "환자와 가족이 마주한 현실은 훨씬 매운맛이다. 영화를 통해 진료실 밖 환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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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우 실제 모델, 세상과 싸운 엄마 "아직 할 일 많아"
영화는 야구부 선발투수를 꿈꾸던 12세 동명 군이 1형 당뇨 판정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극 중 엄마 김미라(최지우 분)는 "열두 살짜리가 무슨 당뇨냐", "집안에 당뇨에 걸린 사람 없다", "설탕만 안 먹으면 되느냐. 완치할 수 있느냐"라며 울부짖는다.
이 장면엔 1형 당뇨를 둘러싼 대표적인 오해들이 담겼다. 만성 질환인 2형 당뇨와 달리 1형 당뇨는 췌장에서 인슐린이 전혀 분비되지 않아 외부에서 인슐린을 투여해야 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주로 유년기나 사춘기에 발병하며, 현재로써는 완치가 어렵다. 영화에서 이를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 평생 뛰어야 하는 '마라톤'에 비유한 이유다.
영화의 주요 사건은 2017년 실제 있었던 일이다. 당시 국내에 정식 수입되지 않던 연속혈당측정기를 김 대표가 해외에서 들여왔다. 전에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손가락을 찔러 혈당을 측정해야 했다. 김 대표는 자녀와 다른 환자들이 보다 안전하게 혈당을 관리할 수 있게 해외 직구에 나섰지만, 관세·규제 당국은 그를 관세법·의료기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김 대표는 "영화처럼 환우회 등 많은 사람이 함께 싸워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회적 논란 끝에 그는 이듬해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이후 관련 제도는 개선됐다.
1형 당뇨 환자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2024년 1월 1형 당뇨를 앓던 9세 여아와 부모가 숨진 채 발견된 '태안 일가족 비극'을 계기로 재조명됐다. 김 대표는 "지난해에도 환우회 차원에서 파악한 극단적 선택 사례가 3건 있었다"며 "매년 2~3명가량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간 치료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평생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지만, 성인이 되면 의료기기 구매비의 본인 부담률이 10%에서 30%로 높아지는 등 '사각지대'가 적지 않다.
다만 올해 하반기에는 일부 제도가 개선될 예정이다. 오는 7월부터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 '췌장 장애'가 장애 유형으로 새로 인정되면서 기준을 충족한 1형 당뇨 환자들이 장애 수당 등 각종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1형 당뇨 환자는 2024년 기준 5만1807명으로, 이 가운데 20세 미만 환자는 4224명(8.2%)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0일 김 대표 등 환우회 관계자들과 만나 "영화 속 동명이 같은 췌장 장애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라며 지원을 약속했다.
김 대표는 "이제 산 하나를 넘었다"라면서도 "중증 난치질환(산정 특례) 지정과 성인 환자의 의료비 지원 확대 등은 여전한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할 일이 많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14년 전, 만 세 살이던 아들이 1형 당뇨 진단을 받은 뒤 시작된 엄마의 전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